탄수화물 중독자(2)
두 번째 홈스테이 하우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호스트였던 할머니께서는 내가 왜 본인의 하숙생이 되었는지를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곤 첫 홈스테이가 내 마음에 남긴 깊은 생채기를 보듬어 주시려고 딸처럼, 손녀처럼 날 그렇게도 살뜰히 챙겨주셨다. 이제야 영국 생활에 봄바람처럼 따스함이 찾아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의 노래가사를 읊조리게 되던 서글픈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라는 참새의, 베이커리와 마트라는 방앗간 방문'은 매일매일 단 하루도 빠트릴 수 없는 습관으로 내 삶에 문신처럼 새겨지고 말았다.
내가 어학연수를 하던 시기는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했던 시기였다.
가뜩이나 환율 높고 물가도 비싸기로 악명 높던 영국에 가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던 나.
알뜰살뜰 아끼며 살아도 모자랄 판에 매일 같이 마트를 배회하며 지갑줄을 풀고 다녔던 철없던 딸이 얼마나 야속하셨을지... 지금 생각해도 죄송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곤 한다.
그럼에도 멀리서 배곯을까, 설움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며 있는 돈 없는 돈 쪼개어 보내주시는 부모님의 연수 자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나는 급기야 학생 비자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구하며 탄수화물이라는 녀석에게 바칠 자금 벌이에 나서게 된다.
당시에 나와 같이 어학원을 다니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원 근처 호텔의 하우스 키핑과 웨이트리스 파트타임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꽤나 경쟁이 치열하던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난 운 좋게 그 호텔의 웨이트리스 직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을 할 예정이던 친구가 자신의 공석을 대체할 사람으로 나를 소개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비자로 규정된 주당 근무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시급 자체가 당시 우리나라의 1.5배가 훌쩍 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내 지갑에는 부모님의 송금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라는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내 돈으로 탄수화물과의 맛있는 조우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물론 이 돈을 다 먹는 데에만 오롯이 쏟아부은 것은 절대 아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아르바이트는 경제적인 자립은 물론 영국인들의 파티 문화를 간접체험하고 파티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다. 밤이 새도록 맛있는 음식과 술, 음악과 춤이 이어지는 결혼식 피로연, 각종 기업들의 행사,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파티 문화와 다국적의 음식 향연은 육체적 힘듦을 이길 수 있었던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업무 스케줄은 들쑥날쑥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지만(심지어 새벽 네다섯 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 어디서도 체험해 볼 수 없을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난 귀국 몇 주 전까지도 이 돈벌이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먹을 것에 그렇게까지나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고 무서워하는 나에게, 무려 타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바지런함을 선사해 주었던 대단한 녀석, 탄수화물. (나 녀석도 참 대단했다.)
단 1년이었지만 내 안에 무척이나 깊이 뿌리를 내려버린, 애증의 탄수화물 추종은 한국에서도 계속되었다.
엄마의 집밥으로 다시 예전 같은 건강한 식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했지만, 나는 한국에 와서도 빵과 달다구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한 마리였다. 무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나름 끼니 대신으로 빵과 과자, 초콜릿,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먹었기 때문에 내 몸이 세상을 차지하는 공간 자체가 엄청나게 넓어진 건 아니었다는 사실. 비만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지만 건강검진을 하게 되면 나오는 다양한 수치가 나에게 적색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혈당은 정상인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고 지방간 수치며 간 결절까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나에게 지방간이 찾아왔음은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이런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듣고서도 그 충격과 각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은 나의 '탄수화물욕'을 채우려 맛있는 빵집, 떡집,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전 세계를 도장 깨듯 누볐던 우리 부부. 결과는 참혹했다.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불어난 우리의 뱃살이 우리 건강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고, 근래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나보다 더 심한 지방간과 높은 혈당수치, 고지혈증까지 불쑥 찾아와 버린 짝꿍의 건강이상 신호를 직면했다. 짝꿍이 이런 처참한 결과를 받아 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탄수화물 중독으로 짝꿍까지 끌어들였던 못난 나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아,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제대로 된 뉘우침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맹목적인 탄수화물 흡입이 아닌, 한창 유행 중인 저속노화나 저당 식단으로 내 집중력과 열정, 관심을 옮겨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점차 탄수화물과의 한 발짝씩 멀리 서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은 아직 탄수화물과 거리를 둔 지 3개월 차, 아장아장 아기 걸음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탄수화물과 애증의 관계가 아닌, 적당히 아는 지인 사이가 될 거라 기대하는 요즘이다.
2025.08.27.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