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39.

부부의 취미 생활(1)

by Ellen Yang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집중력과 끈기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좋게 말해서 이 세상에 있는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았던 거라 해두겠다.)

그리고 습자지와 같이 얇은 귀를 가지고 태어났다. 누군가의 "이거 좋아! 이거 재밌어!" 하는 소리는 여지없이 내 귀를 팔랑이게 만들었고, 누군가의 '좋아요'는 나의 '좋아요'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짝꿍도 나와 비슷한, 어쩌면 나보다 더 팔랑이는 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아니, 확신한다!) 팔랑이는 귀에 큰 장점을 발견한 건 연애를 하면서이다. 짝꿍과 나는 팔랑이는 두 쌍의 귀 덕분에 연애를 할 적에도, 결혼하고 나서도 서로의 말과 행동, 생각에 언제나 귀를 기울였고 서로의 '좋아요'에 언제나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이런 둘의 성향은 서로가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해줄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은 부부가 함께 거쳐온 취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박한 박물관이다.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취미가 나를, 우리 부부를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집안 곳곳에 한 때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친구들의 흔적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짝꿍과 나의 지갑이 얇아지게 만들었던 비싼 취미들의 잔재도 여럿이 남아있다.




우리가 처음으로 공유했던 비싼 취미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둘의 취미로 급부상한 건 짝꿍 덕분이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사진작가를 친구로 둔 덕에 일찌감치 사진에 취미를 두고 있던 짝꿍은 연애를 하던 우리의 풋풋한 시절, 날이 좋거나 나쁘거나 매번 어깨가 결릴 정도의 무게를 자랑하는 미러리스 카메라와 대포만 한 렌즈를 들고 와서는 내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나도 나름 디지털카메라 오너였지만 짝꿍의 카메라와 렌즈 앞에서 내 카메라는 아가용 장난감에 불과했고, 전문가 포스 폴폴 나는 장비에 대한 부러움과 호기심이 일었다. 여기에 더해서 그 카메라 렌즈가 비추는 '아름답게 왜곡된' 세상의 모습에 한눈에 반하고야 만다. 내 마음에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서로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절대 말리지 않는다.

"저거 너무 재밌어 보이지 않아? 배워보고 싶다!"

"그럼 같이 해볼까?"

이 두 마디는 우리 둘 사이의 단골 멘트인 고로, 내가 사진 찍는 걸 배워보고 싶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보다 더 신이 난 짝꿍은 '장비가 시작'임을 강조하며 내가 들고 다니기에 많이 무겁지 않고 가성비도 좋으며 렌즈 호환이 잘되는 카메라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이때 알아봤다. 짝꿍의 소비요정들은 자료조사 덕후였다는 걸...)


그리고 시장조사가 시작된 지 몇 주 후, 내 손에는 소니의 NEX-5R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여기서 함정은, 새 카메라는 내 손에만 들려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내 것 알아보다가 결국 그 안에 거주 중인 소비요정의 부추김에 항복한 짝꿍 역시 NEX-6을 장만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예정에 없던 커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추억하고픈 장면들을 렌즈 안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카메라만 사면 다 되는 줄 알았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카메라 구입과 함께 봇물 터진 듯 지갑이 열렸다. 바로 카메라보다 더 비싼 '렌즈' 때문이었다.

사진 찍기에 점차 열이 오르기 시작하니 기본으로 달려있는 렌즈가 성에 차지 않았던 짝꿍과 나. 렌즈 물욕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조사덕후인 짝꿍의 소비요정들은 거리, 조명 등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왜 렌즈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자꾸만 내 안의 소비요정들에게 속삭였다. 점점 세차게 팔랑거리던 귀, 콩깍지가 씌어버린 눈들은 좋은 렌즈와 그 렌즈 뽑아내는 사진 작품들에 혹하기 시작했고 망원렌즈, 접사렌즈 등이 우리 집 거실 카메라 보관장은 날이 갈수록 빈 곳 없이 채워져 나갔다. 렌즈보다야 저렴했지만 우리 카메라를 한층 더 빛나게 해 줄 스트랩, 케이스 같은 꾸미기 용품들 역시 월급루팡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카메라와 렌즈들이 무겁고 귀찮게 느껴진 데다가 휴대폰의 내장 카메라들이 웬만한 카메라급 이상의 수준으로 성큼 올라가면서 점점 우리가 애정하던 카메라와 렌즈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이제 우리의 취미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는 증거물이 되어 거실장 한 켠에서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주말에 문득 거실장을 바라보다가 우리의 카메라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동안 우리 부부 지갑털이의 주범이었지만 우리의 순간순간을 예쁘게 남겨주었던 고마웠던 친구들.


수개월 전에 소소한 일상을 우리의 추억이 방울방울 담긴 카메라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 일어 꺼내어 들었다가 전원이 켜지지 않던 카메라에 깜짝 놀라 A/S센터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오래되고 방치되어 있던 배터리에서 액체가 새어 나와 녀석을 살려낼 수는 없었더랬다. 이제 더는 예전만큼 애정을 쏟아주지 못하는 주인에게 반발하듯, 더는 우리에게 사진을 내어줄 수 없다는 듯이 토라져버린 친구의 모습에 미안함과 당혹감이 교차했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우리 부부에게 한 곳을 바라보고 하나의 관심사로 묶어주며 결혼까지 올 수 있게 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고마운 친구들이었는데 이렇게 병이 들 때까지 무심했다니...


한창 온정을 담뿍 붓더니만은 이내 따듯한 손길을 거두고 차갑게 식어가게 두었던 과거가 생각나 괜스레 기분이 멜랑꼴리 해지던 주말 오후였다.




2025.09.09.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