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40.

부부의 취미생활(2)

by Ellen Yang


카메라와 사진과 함께 폭 빠져든 취미가 있었으니, 비싼 취미의 대명사 '레고'였다.

어릴 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레고였는데, 왜 갑자기 다 큰 어른이 되고 이렇게 레고에 흠뻑 빠져들었던 걸까? 그 계기의 선봉에도 역시나 짝꿍이 있었다.


연애 초기, 그는 나에게 뚱뚱한 애플주스 유리병 안에 레고블록으로 만든 자그마한 자동차를 담아주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받아본 블록 선물. 그런데 무려 병 안에 들어있는 블록 자동차라니. 이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작은 병 입구로 어떻게 저 자동차를 넣을 수 있었던 거지?'

이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함을 귀신같이 눈치챈, 화술이 몹시 뛰어난 짝꿍의 레고 예찬의 서막이 열렸다. 그리곤 이내 나의 팔랑귀는 점차 날갯짓을 시작했다.


"레고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아? 이거 봐, 이건 사람 키만 한 거야. 레고로 엄청 큰 구조물도 만들 수 있어!"

"하나하나 맞추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레고야. 어떻게 이런 설계를 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니까!"

"이게 또 예전 모델들은 엄청 비싸게 팔리기도 해. 재테크를 레고로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야."


온 사방에 있는 레고 사진과 영상, 블로그 글들을 공유해 주느라 짝꿍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그리고는 어느샌가 레고 매장을 방문하고 신상을 확인하고 시장조사(?)를 하는 것, 레고를 콘셉트로 하는 카페와 전시장은 우리의 데이트에 반드시 꼭 가야 할 코스가 되었다.




연애할 때는 조립을 해도 둘 곳이 변변치 않으니 그나마 값비싼 레고를 구입하는 게 자연스레 지갑 제어가 가능했지만 결혼하면서 둘만의 공간이 생기고 '둘 곳'이 확보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레고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폭스바겐 캠퍼밴이었다. 방에 쫙 깔아놓은 색색의 자그마한 블록들이 맞물리고 맞물려 캠퍼밴의 형상이 갖추어질 때의 그 희열. 빨간색의 둥글진 귀여운 캠퍼밴을 어쩌면 그렇게 블록으로 섬세하게 표현해 냈는지 감탄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 맛에 레고를 하는구나! 어릴 때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레고가 이런 것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게 억울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이 블록작업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건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우리는 레고 모델 중에서도 소위 모델번호가 '만 번대'인 건축물과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하필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있던 이 모듈러 라인에만 말 그대로 제대로 꽂힌 통에 레고는 단숨에 카메라와 렌즈를 제치고 우리 부부의 통장털이범으로 급부상하고야 만다. BMW 미니, 런던버스, 비틀, 월 E 등 레고로 만든 피겨들, 브릭뱅크, 파리레스토랑 같은 건물들까지 온 집안 곳곳을 장식했고 한동안은 레고에서 신상이 나왔다 하면 조건반사처럼 우리 집으로 데려오는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열정을 다해 레고를 사모으던 시대는 '잦은 이사'라는 현실의 장벽에서 멈췄다.

지금까지 무려 여섯 채의 집들을 지나오면서 레고가 이사할 때마다 따로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애물단지로 좌천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이제 새로운 레고 모델들이 우리의 공간을 채우는 일은 멈춤 상태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집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레고들은 어디에 있냐고?

건물들은 다시 분해해서 원래 담겨있던 박스에 욱여넣었고, 자동차 같이 이동이 수월한 친구들은 우리가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을 때가 올 때까지 친정집에서 임시 보관 중이다.




예전보다는 애정이 깊이가 얕디 얕아졌다고는 해도 아직도 어딘가를 가서 레고 매장을 만나게 되면 생각지 못한 옛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마냥 기분이 좋다. 그런 탓에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꼭 한 번씩은 들어가서 눈인사라도 남기고는 한다.


언젠가는 완전한 우리의 집이 생겨서 엄마 네에 있는 자동차 친구들을 우리 곁으로 가지고 오고, 창고 안 박스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건물 친구들 역시 햇볕 잘 드는 거실장 어딘가에 다시 자리 잡아 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길 소망해 본다.




2025.09.10.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