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결혼식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식 하객으로 초대되는 일이 연중행사만큼이나 줄어들었다.
웬만한 주변인들은(심지어 사촌 동생들마저도) 결혼이라는 인생 미션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디선가 날아오는 청첩장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괜히 내가 신이 나고는 한다. 이 신나는 마음은 곧 내 손가락이 우리의 결혼사진 폴더를 열어보게 만들고, 사진 속 13년 전 우리의 모습에서 웨딩촬영을 하던 늦가을의 추위와 눈꽃 날리던 겨울날의 결혼식의 추억을 꺼내어 보게 만들기까지 한다.
한 달 전쯤, 짝꿍의 지인으로부터 신랑과 신부의 풋풋함과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청첩장이 도착했다. 나보다는 마당발인 짝꿍은 아직도 종종 어린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받고는 하는데, 이번에 연락을 주신 예비신랑은 나도 전에 뵌 적이 있는 분이라 축하인사도 전할 겸 함께 가자며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타인의 '경사'에 설레는 마음을 꾹꾹 담아 일찌감치 달력에 똥글뱅이를 돌돌 돌려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완전히 친한 지인도 아니었음에도 오랜만에 초대받은 결혼식에, 그저 마음속에 신남과 신랑 신부를 향한 진심 어린 축하가 꽉 채워졌던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즐거운 기분만큼 맑고 쾌청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음을(그때까진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기며 집에서 차로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수원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
신랑 신부는 어떤 모습일까, 예식장은 예쁘게 꾸며졌을까, 하객이 많으려나, 인사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주차장에 자리는 있으려나, 우리 결혼식 할 땐 이랬는데 말이지 등등 다양한 주제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만치에 자리한 웨딩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웨딩홀 안에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라 옆에 옆에 있는 야외 임시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는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에 발목을 휘청이며 서둘러 예식장 안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와... 사람이 너무 많은데...??"
1층부터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겨우 식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는 사람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짝꿍은 그 틈을 겨우 비집고 축의금을 내러 갔고, 나는 한동안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옴짝달싹 못하고 서있었다. (출퇴근길의 4호선 같았달까.)
이분이 이렇게나 많은 지인을 두고 있었음에 놀란 마음으로 사람들 틈에서 나부끼던 나는 짝꿍의 손에 겨우 구출되어 정신을 차리고는 신랑분께 축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식장 내부로 들어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단 얼굴 마주하고 우리가 왔다는 알림과 함께 축하 인사는 전했으니 식장에 들어가서 예식 전체를 보는 건 깔끔히 포기. 어쩔 수 없이 식이 시작함과 동시에 식권을 들고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식장을 비추어주는 큰 스크린 밑에 자리를 잡고는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약간 코미디 같았던 건, 밥 한술 떠먹겠다고 고개를 숙였다가 스크린을 보면 예식 절차가 쑥쑥 진도를 빼고 있었다는 거다. 심지어 뷔페에서 두 번째 접시를 잠깐 뜨러 간 사이에 두 번째 축가가 시작되고 있었을 정도였다. (첫 번째 축가는 보지도 못했는데...?!)
원래 결혼식에서 얼굴을 볼 예정이었던 다른 지인분은 차가 막혀서 결혼식에 딱 20분 늦으셨을 뿐인데 이미 식은 끝난 후였고, 그나마 다행히도 친구들의 사진촬영에는 참여하실 수 있었다는 후문.
심지어 한창 지인들 결혼식이 몰려있을 때는 하루에 두 번의 결혼식을, 무려 12시 예식과 2시 예식을 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아무리 예식 자체가 짧다고 하지만 시간에 쪼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의는 아니었지만 첫 번째 결혼식은 연회장에서 식사를 하며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았고 '엇, 이제 친구들 사진촬영 시작하겠는데?'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은 순간에 후다닥 다시 식장으로 올라가 인증숏을 꽝 찍고는 바로 다음 친구의 결혼식장으로 뛰었던, 잊으래야 잊히지 않던 날이었다.
얼마 전에 알베르토 몬디 님의 이탈리아 소개 책자에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결혼식에 대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성당 결혼식은 12시간짜리라고. 이런 그들에게 짧기가 거의 릴스나 숏츠 수준인 한국의 결혼식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울까 싶다.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님들께서도 결혼식이 하루 내내 이어지는 잔치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통혼례와 마을잔치란 정말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아무리 매사가 '빨리빨리'로 일관하는 한국인이라지만 결혼식마저도 20분 컷이다. 성수기 시즌 웨딩홀들은 1시간을 간격으로 결혼식들이 줄지어 예약이 되어 있어서 한 커플이 식장으로 입장함과 동시에 홀 바깥은 순식간에 깔끔히 치워지며 다음 예식을 예약한 커플의 사진과 축의금 테이블이 꾸며지기도 한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참 별스럽다 싶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이란 내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설레고 즐거운 일임은 불변의 진리이기에, 이런 짧은 순간을 위해서도 한껏 차려입고 축하의 마음을 담아 식장으로 쪼로로 달려가는 거겠지.
다음번엔 어떤 결혼식이 나와 짝꿍을 부를지 벌써부터 기대가 가득 차오른다.
2025.09.1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