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21.

지행불일치의 순간(4)

by Ellen Yang


그리고 지난 2022년 초.

한동안 잠잠했던 지행불일치의 순간이 또다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맹목적인 자신감과 함께 말이다.




불현듯 이렇게 내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뇌리에 꽂혔다.

주변에서 운전을 좀 하지 그러냐는 권유와 강요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점점 더 거세어졌기 때문이다. 면허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대중교통을 타면서 감염의 위험을 높일 게 무어냐면서.


이건 순전히 굳센 줏대를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의 불찰이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 아래서 주변인들의 말에 점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결국 운전을 해야겠다는 큰 결심이 들어섰다.

결심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믿을만한 소식통이라 여겨지는 우리 동네 맘카페에 '운전연수 선생님을 찾습니다'라는 문의를 남겼고, 선하신 이웃님들 몇몇이 알려주신 선생님들 중 한 분을 스승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짝꿍의 차 사랑의 깊이를 알기에 그의 차로 운전을 하기에는 마음에 부담이 컸다. 그래서 그 핑계로 중고로 자그마한 '나의 붕붕이'를 장만하기에 이른다. 나름 준비물까지 야심 차게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찾아오신 선생님께 내 차를 소개해드리고(차종에 따라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수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대부분 먼저 차종, 옵션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한다.) 드디어 첫 연수를, 무려 17년여 만의 첫 주행을 시작했다. 근처 공터 같은 곳에서 차선 변경, 주차 등등 운전에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받고 있자니 뭔가 예전에 배웠던 지식들이 하나둘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라와 주는 것만 같았고, 점점 자신감이 어깨 위로 차올랐다.

세 번째 연수가 끝났던 초봄의 일요일 저녁이었다. '운전 별거 아니네!'라는 알량한 자신감이 내 마음에 번져나가고 있던 시기, 짝꿍이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스벅 DT로 커피 픽업 겸 드라이브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야간 운전이 처음이었지만 아빠만큼이나 침착 드라이버인 짝꿍을 곁에 두고 있고 많이 멀지 않은 거리에 일요일 저녁에 차도 많지 않겠거니 하는 마음에 덜컥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나의 붕붕이는 우리 집 주차장을 떠났다.


우리의 목적지였던 스벅 DT를 가는 길엔 크고 복잡한 사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거리에서 우리는 좌회전을 했어야 했다.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있던 우리. 짝꿍은 픽업할 음료를 주문하려 휴대폰으로 들고 앱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 위에 초록불이 켜졌다. 그리고 내 발은 슬며시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그 신호는 좌회전의 초록불이 아니었다. 동그란 직진신호 초록불이었던 것이다.

순간 잘못 보고 액셀을 밟았으나 내 뇌는 이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곤 애절하게 '직진 신호야!'를 외쳤지만 내 발은 이 외침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때라도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반대편 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는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도 왜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던 걸까.

이 찰나의 순간, 잘못된 발놀림으로 짝꿍과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에어백이 터질 만큼 강한 충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신의 도움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행히 상대편 차도 내 차도 고속주행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어서 사람 셋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부딪힌 위치를 보았을 때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달렸다면 상대차의 본넷이 짝꿍이 앉은 보조석을 그대로 박았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할 뻔했는지...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상대 차주분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아직도 그분께는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 너무나 죄송합니다.)

초봄,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한껏 더 내 속으로 파고들던 밤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당장에 운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이미 선금을 낸 연수는 끝맺어야 할 것 같아서 남은 연수는 짝꿍의 차로 마무리했다. 네 번째 레슨에서 돌연 바뀐 차를 보신 연수 선생님의 "같은 차로 연수를 받는 게 좋은데... 왜 차를 바꾸신 거예요?"라는 질문에는 연수가 끝날 때까지 차마 답변을 드릴 수 없었다.


그 운전연수를 마지막으로, 난 결국 아예 운전대와의 작별을 고했다.

(운전을 그만두는 건 나의 안전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리고 영원히 뚜벅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간혹 날 찾아오는 이런 크고 작은 지행불일치의 순간들은 가뜩이나 겁이 많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게 만들곤 한다. 작은 실수로 무마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때는 위험천만한 사고로 번질 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예기치 못한 사고를 피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현되며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불시에 내 앞을 가로막는 이런 순간들이 내 자신감을 긁어대고 그나마 있지도 않은 자존감마저 한없이 쪼그라들게 만든다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경험으로 깊이 각인된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겠지.


앞으로 내가 만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언제든 고개를 빼꼼히 내밀 수 있을 예측불허의 생각과 행동의 어긋남이 두려워 인생의 소중하고 중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을 순간들을 먼발치에서 놓쳐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나 자신을 보듬어주어야겠다.


지행불일치의 순간들이여, 이제는 제발 안녕.




2025.08.2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