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콤플렉스
오늘은 나의 신체 콤플렉스 중 하나를 슬쩍 꺼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콤플렉스가 될 만큼 그렇게 중요할까 싶을 수도 있으나, 생각보다 예상치 못한 곳곳에서 세상살이를 꽤나 불편함을 주는 그것.
바로 '지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어릿한 기억에 따르면, 인생 첫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동사무소(現 주민센터 또는 행정복지센터)에서 엄지손가락의 지장을 찍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녀석은 제법 또렷하게 본인의 흔적을 남겨주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한동안은 어디에 지장을 찍고 다닌 적은 없었기 때문에 내 지문의 행방에 딱히 신경을 기울였던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내 지문이 남들과 다름을 알게 된 건, 공항의 자동입국심사 시스템을 이용하면서였다.
2008년에 우리나라 공항에는 자동출입국심사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일대일 대면으로 신분을 확인하고 그 안에 도장을 받아야만 했던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여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리고 이 시스템이 도입되고 2년 여가 지난 2010년 여름, 나와 동생은 영국으로 둘만의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햇수로 5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후로는 다른 나라로 출국을 한 적이 없었던 나는 여행의 시작, 인천공항에서 마주한 자동출입국 심사대가 내 생애 첫 자동출입국심사였다.
자동출입국 심사절차는 그 시스템이 의도한 대로 절차가 참으로 간소했다.
일단 여권의 사진이 있는 부분을 기계에 스캔을 하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고 나면 게이트가 열리면서 출국 승인이 났다.
간단하지만 처음 마주한 신문물 앞에서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1. 여권 첫 페이지를 스캔대에 올렸다. ▶ 승인완료
2. 기계 앞 카메라를 응시했다. ▶ 승인완료
3. 그리고 지문인식기에 검지를 댔다. ▶ "삐, 손가락을 다시 올려주세요."
'응? 이게 왜 안 되는 거지?'
오른손가락 모두를 번갈아가며 계속 지문인식기에 올렸다 뗐다를 반복했지만 기계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당혹감은 등골에 냉기를 불러왔다.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이 솟구칠 것만 같았다. 이미 출국대를 지난 동생은 나만큼이나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나 혼자서 가야 하는 거야, 언니???!!'라고 말하던 너의 눈빛...), 내 앞의 심사대는 입을 꾹 다문 채 계속 빨간 경고빛을 쏘고 있었다. 적색등만큼이나 울긋불긋한 얼굴로 심사대에서 연신 손가락과 씨름하고 있는 날 발견하신 공항 직원분. 이런 일에 익숙하신 듯 조용히 예전 출국심사대로 나를 끌어주셨다.
지문이라는 필수 준비물이 부재상태였던 나는 신문물 앞에서 보기 좋게 거부를 당했고, 난 그렇게 '편의를 제공받는 국민'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자동출입국심사에 트라우마가 생겼기도 하다.
요즘은 출국심사대 줄을 설 때에 안내를 해주시는 직원분께, "저 지문인식이 잘 안 돼요."하고 말씀드리고는 거부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대면심사대로 향한다. 그 편이 훨씬 속이 편하다.(그리고 요즘은 대부분의 한국인 분들이 자동출입국심사를 이용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대면심사대의 줄이 짧고 심사가 빠르게 끝날 때도 많다.)
다만, 요즘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입국심사대에도 지문 인식기를 비치해 두는데 혹시나 지문 때문에 입국거절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내에서 나눠주시는 물티슈를 꼭 챙겨두었다가 입국심사를 기다릴 때 꺼내어 물티슈로 손가락을 불려두고는 한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지문 인식기와의 불편한 만남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인 것이다.
지문의 쓰임은 비단 여행에서 뿐은 아니다.
성인이 되니 부동산 거래나 자동차 구입 등등의 사유로 주민센터에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일이 종종 생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지문으로 애를 먹고는 했다.
한 번은 자동차 구입을 위해 인감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주민센터에서 지문 인식이 안 되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호구조사(?)에 직면하기도 했다. 일단 지문 인식에서 거절당해 스크래치가 난 마음은, 주소, 가족이름 등등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이 갑작스레 귀에 꽂히면 다 아는 답이 입안에 뱅글뱅글 돌기만 하며 바깥으로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지문인식 거부에 이은 2차 멘털 바사삭의 순간이 이어질 수 있는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문 인식 한 번만 제대로 되면 될 일이 수십 분을 소요해야 하는 번거롭디 번거로운 일로 변하곤 했다.
이외에도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은 물론 도어록 등 우리의 삶 속 곳곳에 지문 인식을 개인정보 확인에 필요로 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요즘, 다른 이들에게는 손쉽고 간편할, 하지만 나로서는 사용이 '불가'한 쓰잘 데 없는 지문인식 기능은 오히려 나와 기계들 사이에 거리를 두게 만들곤 한다. (내 지문을 읽지 못하는 내 소유의 물건들에 괜한 미움만 쌓이니 말이다.)
난 이게 나만이 겪고 있는 '별난 문제'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엄마는 여행사를 다니던 동생 덕분에 하와이로 인생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실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이 하와이로 출국하던 날, 동생은 자동출입국심사대에서 2010년의 데자뷔를 경험하게 된다. 다만, 그 자리에는 내가 아닌 엄마가 있었다.
세상에... 지문이 옅은 게 유전이었다니!!!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듦과 동시에, 나처럼 밋밋하디 밋밋한 엄마의 손바닥 지문을 바라보면 고되었던 엄마의 젊은 날들에 슬픔이 나면서도 이게 유전이라느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났다.
얼마 전 나태주 시인의 「봄이다, 살아보자」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펴고 목차를 훑는데 그중 유독 내 눈길을 확 사로잡는 소제목이 있었다. '지문이 사라졌다'
나태주 시인께서 말씀하시길, 책을 많이 만진 것도 지문을 닳게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책을 좋아하는 나의 지문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깊이 패이지조차 않았던 나의 지문은 그마저도 책장으로 부벼지며 닳기까지 하고 있었던 건가보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태주 시인께서 지문으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셨다는 사실에 그간 나에게 미움만 받던 이 옅은 지문은 한순간 시인님과 나 사이를 실낱같은 동질감으로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아무리 내게 불편을 주어도 평생에 걸쳐 온전히 미워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가까이서 보아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나의 지문을 쳐다보며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
2025.08.23.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