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불일치의 순간(3)
40년 인생에서 맞닥뜨렸던 지행불일치의 순간 중 대망의 공동 1위.
20년 전, 그리고 3년 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 어떤 공포스릴러물보다 아직도 내 등골을 한없이 오싹하게 만들곤 한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쓰는, 장롱면허만 20년 차이다.
대학교 입학 전에 운전면허를 같이 따자며 결의를 다진 친구들과 서울 외곽 어느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해서 무려 1종 보통을 취득했다. (다른 친구들은 2종 보통을 응시했지만, 나중에 돈벌이가 없으면 배추라도 실어서 팔아야 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지론(?)에 따라 혼자 트럭을 몰았다.)
트럭으로 도로주행시험까지 합격을 하고 드디어 운전면허증이라는 걸 받아 든 순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제 정말 성인이 되었구나. 나 이만큼 자랐구나.'
나 자신이 나를 대견하다고,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토닥여주는 그 기분, 성취감.
(매일 성신여대입구 앞에서 회색빛 낡은 봉고를 타고 퇴계원 지나 산골짜기에 위치한 학원까지 한 달 넘게 정말 열심히 다녔던 나 자신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첫째 딸이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자 아빠가 "기념이다!" 하며 선뜻 딸에게 본인 차의 운전대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아빠가 운전대를 내어주심과 동시에 엄마와 동생도 "울 딸, 울 언니 운전실력 좀 볼까?"라며 급작스런 드라이브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렇게 나에게는 가족과의 드라이브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그런데 아빠 차의 운전석에 앉았던 나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그 당시에 축제 차량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트럭과의 메커니즘이 사뭇 달랐던 것이다.
일단은 차의 앞부분이 길어서 트럭만큼 시야가 뻥 뚫리지 않았다. (트럭은 본넷이 없는데 승용차는 본넷이 있어서 차 유리 너머로 보이는 차간거리가 달랐다.)
그리고 수동인 트럭에 반해 오토였던 아빠의 차는 발아래 페달 수가 하나 적었다. 트럭에서 중요하게 쓰이던 클러치라는 페달이 없고, 내 발 밑에는 브레이크와 엑셀만이 있었다. 이 말은 트럭은 양발운전인데 승용차는 한발 운전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때 깨달았다. 난 아빠차를 운전하려면 2종 오토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구나.
차라리 2종을 딸 것을. 어차피 실생활에서 내가 트럭을 몰 일이 뭐가 있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쿨하게 운전대를 내어준 아빠는 졸지에 나의 일일 운전선생님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운전 생짜 초보가 모는 축제차량과 함께 서울 도심 드라이브를 떠났다.
맨날 경기도 외곽에 탁 트인 도로만 트럭을 몰던 내게, 도심 속 도로는 마치 가시덩굴이 울창한 정글이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가시에 찔리고 쓸릴 것만 같았다. 특히나 택시와 버스는 맹수와 다를 게 없었다.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그들은 신생아 단계 운전자인 나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곤 했다.
그래도 아빠라는 운전만렙의 실력자를 옆에 두고서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다 보니 새로운 운전방법에 점차 익숙해졌고 자신감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 하지만 자신감아, 한 시간짜리 드라이버에게 그렇게 섣부르게 고개를 들어 올려선 안 됐어.
대번에 내 생각이 자만이라는 듯, 운전에 초집중하라는 하늘의 경고가 떨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버스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무려 버스가 있는 차선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 큰 버스가 내 눈높이가 아니라서, 그리고 푸른 그 색상이 마치 하늘의 공백 같아다는 착각을 했던 거다. (안다.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변명인지. 하지만 내 딴엔 진짜 옆 차선이 공백으로 보였다.) 온 가족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헉'하는 내적 비명을 난 듣고야 말았다.
이번에도 아빠가 나의 구세주였다. 아빠가 큰 소리로 '직진!!!'을 외쳤고, 난 그제야 버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다행히 버스와의 접촉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
살짝 올라간 자신감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집까지 무슨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이 날, 아빠는 어깨에 오십견이라는 손님을 맞이하셨고, 가족 모두 살고자 차 문 손잡이를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단체 몸살이 났다.
이 이후, 난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래, 주변의 권유에 아랑곳 말고 아예 운전대에 손도 대지 말았어야 했다.
2025.08.2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