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9.

지행불일치의 순간(2)

by Ellen Yang


카페 알바 에피소드가 소소하고 귀여운 실수였다면 그보다는 좀 더 수위가 높은,

내 인생을 통틀어 톱 2에 랭크된 사건은 '새벽녘 고로케(크로켓) 만들기 대참사'라 명명할 수 있겠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던 그 해였다.

어쩌면 나의 부재, 갱년기가 한창이던 엄마, 냉랭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고3 수험생 시절에 제대로 된 공부를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생은 재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어학연수 후에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영어를 독학하기 위해서 1년의 휴학을 더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앞선 일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당시 나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깊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내 공부도 공부지만 다시 수험생이 된 동생의 뒷바라지에도 꽤나 열정을 쏟았던 듯하다. 그중 하나가 동생의 '간식 챙겨주기'였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동생의 수험생 기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만한 맛있는 간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매일매일 간단하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그리고 동생이 좋아할 만한 레시피 탐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근 몇 개월간의 성공으로 부쩍 요리에 자신감이 붙은 나.

사건 당일 내가 선택한 그날의 메뉴는 바로 '감자 고로케'였다.


내가 찾아놓았던 레시피가 말하길, 감자를 삶고 으깨서 양파와 당근을 다져 넣고 반죽을 만들고, 계란물과 빵가루를 입혀서 노릇노릇하게 기름에 튀기기까지의 과정만 잘 따르면 맛있는 고로케가 탄생한다고, 보기보다 간단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글자로 적힌 레시피만 읽어 봤을 때는 '오, 간단한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려울 게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로케가 말로 몇 자 풀어놓은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가는 음식임을 직접 요리를 하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날은 오전에 일정이 있어서 요리를 후딱 마치고 외출 준비를 했어야 했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족들에게 선보일 고로케를 제한시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머리와 손의 소통 오류를 또다시 불러오게 된다.


하필 원래 계획했던 기상시간보다 약간 늦게 일어났고,

일정 때문에 빨리 나가는 봐야겠는데

감자는 생각보다 빨리 익지 않았고 채소 다지기에도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계란물과 빵가루까지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던 차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해 보고자 미리 올려놓았던 냄비 속 식용유가 화근이었다. 하나씩 천천히 했어야 했는데.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찰나, 식용유는 스멀스멀 연기를 뿜으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때 가스레인지를 바로 끄고 주변에 있던 채소 같은 걸 기름 속에 넣어서 열기를 식혀야 했다.

이론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식용유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연기를 보고 뇌정지가 왔다.

그리고 정말 천만 다행히도 일찍 일어나신 아빠가 연기가 폴폴 나오는 가스레인지에 눈이 고정된 채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날 보고는 급하게 상황을 진압해 주셨다.


고로케 하나 먹이려다가 집을 태워먹을 뻔하다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거였나 보다.)


그 이후로 튀김요리는 내 주방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 가족사이에서만큼은 튀김이 외식으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친정집을 새로 도배를 하기 직전까지, 친정 주방 천장에는 그날 식용유가 내뿜었던 검은 연기의 흔적이 내 흑역사의 증거기록인 양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한다.

(아마 내 짝꿍은 내가 튀김을 건강상의 이유로, 기름진 음식을 싫어해서 멀리하는 줄 알 수도 있지만 과거의 오싹한 전력이 튀김과 나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 알게 되겠지.)


이 일이 있고 나서는 이만큼의 임팩트를 가진 큰 사건이 한동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방심하고 있던 나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듯,

다시 한번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5.08.20.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