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8.

지행불일치의 순간(1)

by Ellen Yang


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것은 아니고, 벌써 면허증 갱신만 2회 차가 지났을 정도로 면허를 취득한 건 거의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는 것이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종종 나의 멘털을 뒤흔드는 '지행 불일치의 순간' 때문이다.


나를 아는 이들 대부분은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매사에 차분하고 침착하다고 여겨주신다.

하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다. 간혹 머리로 알고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는 판이하게 툭 튀어나오는 '돌발상황'을 마주하는 경우가 잦음이 이에 대한 반증이다.

다만, 결단코 이건 내가 절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수 있지만, 난 이런 난감한 상황에 꽤나 자주, 정기적으로 놓여왔고, 왜 이렇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반대로 또는 일치하지 않으며 뻐걱이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대학생 시절, (알바 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았던) 카페 알바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 카페는 인적 드문 미술관의 카페 오너이고 싶으셨던 관장님께서, 매출과 상관없이 운영을 고집하셨던 카페였다. 그래서 카페 안이 붐빈다고 해봤자 네다섯 명이 한 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을 정도로 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고, 아무리 손님이 없다 해도 매니저님께 일을 배우느라 초반에는 혼자서 카페지기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처음으로 오픈 후 딱 두 시간을 혼자 있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카페는 고요했지만, 처음 혼자 카페 카운터를 지키게 되었다는 불안감에 제발 이 두 시간이 조용히 흘러가길 (또는 중간에 합류할 아르바이트생이 조금이라도 빨리 와주길)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절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듯, 갑자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

이런 많은 인파(?)는 알바를 시작하고 처음이었다.(일요일에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나를 혼자 이 타임에 넣어둔 매니저님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고 가는 말씀들 듣자 하니 근처의 교회 예배가 끝나고 커피타임을 가지러 오신 거였다.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난 카페에서 일한 지 몇 주도 채 되지 않았고, 그분들이 주문하는 음료는 심지어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정도의 멘털 대지진이라면 나의 알바 매뉴얼과 실제 손놀림에 엄청난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일어날 위험이 일어날 소지가 99%에 육박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혹시나, 제발...' 하는 마음은 '아... 역시나...'로 바뀌었다.


그 당시 내가 일했던 카페에서는 손잡이 쪽에 손가락만 한 이산화탄소통을 끼워야 부드러운 생크림이 나오는 휘핑기를 사용했는데, 맨 처음 알바 교육을 받을 때에 매니저님의 알바 시 '주의'해야 할 목록 1순위에 이 휘핑기가 있었다. 이산화탄소가 다 배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휘핑기 뚜껑을 살짝이라도 돌리면 안에 크림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뚜껑이 날아가서 다칠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하필 그분들이 주문했던 메뉴에 휘핑이 잔뜩 올라가는 카페모카가 있었고,

하필 그때 휘핑기에 이산화탄소가 애매하게 남아서 휘핑이 반 액체의 상태로 흘러나왔고,

하필 그때 머릿속이 마비되어 그만 머리에서 알려주던 가스 빼는 절차를 내 손은 따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히 뚜껑이 펑하고 튀어 오르진 않았지만) 안에 있던 액체상태의 휘핑크림이 온 사방에 눈꽃처럼 퍼졌다.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눈앞에 '슬로 모션'이 펼쳐진다는 순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정말 다행히도 워낙 카페 자체가 넓고 테이블과 카운터와의 간격도 넓었기 때문에 서로와의 대화에 초집중하고 계셨던 손님분들께서는 바에서 일어난 휘핑크림 폭발사고를 알아채지 못하셨다. 떨리는 마음을 연신 부여잡으며 겨우겨우 열 잔이 넘는 음료를 제조하고 서빙을 마치고 나니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때 동갑내기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카페에 들어왔다.

그 친구는 내 몰골과 초토화된 바 테이블을 훑어보며 본인이 오기 직전에 이 바에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착하디 착했던 그 친구, 울상인 내가 상처받을까 봐 (사실 자신에게는 너무 웃기기만 한 이 상황에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애써 참으며) 말없이 사건현장 수습에 동참해 주었다. 우선 내 머리카락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휘핑크림의 잔해를 떼어내주고, 내가 카페 바 쪽에 현대미술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하학적으로 수놓은 휘핑크림 페인팅도 같이 닦아주었다. 그 친구 덕분에 제법 빠르게 현장은 예전 모습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당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퍼졌고, 매니저님이 신입 아르바이트생을 교육시킬 때 '주의사항'에 대한 실제 예시로 활용(?)되었다 한다.




이 이후에는 두 번 다시는 휘핑기를 가지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았지만, 손님들이 오셔서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속으로 '제발 휘핑크림 올라가지 않는 음료를 주문하게 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바람이 자동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겪었던 신참 카페 알바로써 직면했던 지행불일치의 순간은 굉장히 사소한, 내가 겪었던 다양한 경험 중 애교 섞인 사건 사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급하게 콩닥거리는 마음은 머리와 손 사이를 신경전달을 두둑두둑 끊어버리고, 결국 손은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못하는 경험들 중에는 자못 심각하게 번질 수도 있었을,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사고들도 있었다.




2025.08.19.

Ellen Yang


작가의 이전글밀린 일기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