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

숫자에 약하던 아이

by Ellen Yang


서른이 지나고 나서부터의 나는, 누가 내 나이를 물었을 때 바로 답하기가 어려웠다.

왜 난 그렇게도 나이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어려웠을까.

이 질문을 곰곰이 곱씹다가, 문득 내가 어릴 때부터 서른이라는 숫자에 약했던 아이였음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우리 부모님은 사당동에 있던 가족의 첫 보금자리를 떠나 엄마의 일터 근처 동네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엄마는 서울에 올라와서부터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까지 고모할머니께서 운영하시는 한복전문점에서 한복을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아이 둘을 돌보며 왕복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거리를 출퇴근하시기가 어려웠던 탓에 '직주근접'을 위해 이사를 택하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방 하나, 주방 겸 거실이 있는 좁은 반지하 집에 새 보금자리를 펼치게 된다.


아무리 가까워졌다 해도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며 일하기가 버거웠던 조카가 안쓰러우셨던 고모할머니께서는 한복을 만드는 다양한 재료들과 기구들을 집으로 옮겨주셨다. 그 덕분에 엄마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우리 자매를 돌보며 한글이나 시간보기, 숫자세기 같은 학습에도 신경을 써주실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글도 제법 빠르게 배운 편이고 시계 보는 법도 금방 배웠다. 우리 엄마에게도 여느 엄마들에게 한 번쯤 지나간다는 '어머, 내 아이가 천재 아니야?'라는 순간을 선사해드리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놈의 '기수'라는 개념을 가르쳐주시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숫자를 세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수는 '하나, 둘, 셋,...'이라고 읽는다. 그리고 기수와 서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일, 이, 삼...'이라는 숫자 읽는 법도 있다.


여덟 살의 여름방학. 엄마는 나에게 '기수로 숫자를

세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스물아홉까지 곧잘 세다가도 꼭 서른의 차례가 오면 그 단어가 그렇게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두 번은 엄마도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주고 또 알려주셨겠지. 하지만 아무리 알려줘도 꼭 스물아홉에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반지하 집의 출입문을 열어놓고 집 밖 골목에서 줄넘기를 하며 숫자를 세던 그날. 하필 줄넘기 줄은 스물아홉까지 걸리지 않았고, 숫자가 하나씩 더해질수록 내 마음속의 긴장감 역시 점점 고조됐다. 그리고 드디어 서른 번째 줄넘기. 혼이 날까 봐 긴장으로 새하얘진 머릿속은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짓눌렸으나 차마 서른을 뱉어내지 못한 채, 애먼 스물아홉만을 여러 차례 웅얼거렸고 이 소리는 현관문 바로 앞 거실에서 차분히 바느질을 하던 엄마를 인내심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다. 단전부터 끌어올린 사자후를 내지르던 엄마. 그 분노가 가라앉기 전까지는 집안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후에도 불호령의 시간이 몇 차례 지나갔고 드디어 이 숫자, 이 단어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서른이라는 단어만 그토록 외워지지 않았는지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 드디어 서른이라는 나이를 정면에서 맞이하게 되었을 때.

처음 만난 누군가가 내 나이를 물으면 서른이라는 숫자가 또다시 내 입에서 힘겨운 탈출을 하게 될 줄이야.

꼬마였던 나는 서른 살의 나의 모습을 예견했던 것이었을까.




2025.08.02.

Elle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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