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2.

즐거운 셋방살이

by Ellen Yang


지하철 4호선 사당역을 지나칠 때면 종종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가 떠오른다.

혈혈단신으로 전라도에서 상경하셨던 내 부모님께서는 지금으로 치면 사당역과 남성역 사이 가파른 언덕길의 어딘가에 자리했던 2층 연립주택의 2층 셋집을 그들의 보금자리로 얻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집은 구조가 신기했다.

큰 대문과 마당이 있는 2층집이었는데 1층에는 주인 가족이 거주하셨고 건물의 왼편에 있던 외부 쪽계단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살던 2층집의 출입문이 있었다. 그런데 2층을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여기뿐이 아니었다. 집주인 가족이 사시던 1층과 우리가 살던 2층이 이어지는 실내 나무계단도 있었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서 방문같이 생긴 나무 문 하나만 열면 두 집은 서로 이어졌다.




주인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 고등학생 언니, 중학생 언니와 국민학교를 다니던 오빠 하나, 이렇게 다섯 식구가 있었다.

아참, 멍멍이도 있었지.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내가 그렇게 만만했는지 나만 보면 짖어대고 으르렁거리며 따라다니는 통에 겁과 눈물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어린이는 매일매일 대문부터 2층 현관까지의 길에서 인생의 쓴 맛과 공포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빠가 어디선가 나무판자를 구하셔서는 내 방패를 만들어주셨더랬다.) 이 친구 덕분에 개 짖는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요즘도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고오맙다, 친구야.

그래도 (멍멍이를 제외한) 집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 언니들과 오빠가 난 정말 좋았다.

우리가 2층에 세를 산다고는 했지만, 2층에 있던 방 3개 중에 하나는 언니들이 쓰는 방이었다. 그래서 사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과 나무문은 언니들이 매일 오가야 하는 통로였고 그래서 잠겨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덕에 바쁜 일상에 허덕였던 엄마 대신 두 언니가 '왜? 병'이 한창이던 미운 여섯일곱의 나를 참 살뜰히 보살펴 줬었다.

그나마 나이차이가 제일 적게 나던 국민학생 막내오빠는 나의 '아기공룡 둘리' 메이트였다. 둘이서 그 만화에 폭 빠져서는 둘리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한시도 화면 앞에서 가만히 있질 못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모습이 재밌으셨나. 그 당시에 아빠는 집에 무려 비디오 기기를 들이셔서는 우리를 위해 '드래곤볼', '란마 1/2' 같은 만화영화를 하루가 멀다 하고 빌려다 놓으셨다. 오빠와 나는 하교와 하원 후 오후가 되면 이 만화영화들을 보며 주인공을 따라 대사를 치고 주제가를 함께 부르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즐겁던 시간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직주근접을 위하여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내 인생의 첫 쓰디쓴 이별이었고, 그때 언니 오빠들과의 헤어짐이 너무나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더랬다.


한창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던 시기. 프로그램의 시청자라면 누구나 '나라면 누구를 찾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한 번은 해봤을 거다. 난 이 프로그램의 게스트가 된다면 이분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린 나에게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기억을 주셨던 이들이다.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였던 두 집이 정말 말 그대로 한 가족처럼 수년을 동고동락했던,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즐거운 셋방살이였다.

그 이후에 다녔던 전셋집들에서는 다시는 없었던 경험이었기에 그분들과의 따스했던 관계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2025.08.03.

Elle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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