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아이돌이었다
내가 이 세상살이를 시작했을 무렵,
우리 가족은 사당동 어느 높은 언덕배기 위에 있었던 연립주택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예나 지금이나 손재주가 좋은 엄마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시작한 일은 한복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에 엄마는 고모할머니께서 운영하시던 한복전문점 소속이었는데, 이곳이 돈암동에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나는 매일매일 4호선 출퇴근길을 동행했다.
(결국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세 달 만에 엄마의 직주근접을 위해 우리 가족은 고모할머니 댁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된다.)
고모할머니께서 운영하시던 한복부띠끄에는 할머니와 동년배이신 다른 할머니들과 중년의 아주머니들도 몇 분 계셨는데, 매일 엄마를 따라 출퇴근을 하던 나는 이들 사이에서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다. 극 I의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동갑내기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다수의 어른이 계시던 환경 안에서 성장한 덕분인지 어른들에게 어떻게 하면 예쁨 받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르신들께 호감 받는 상(?)이다.)
이를 증명할, 아직도 엄마를 통해 종종 듣고 있는 나라는 단기 반짝 아이돌의 전설적인 일화를 풀어보겠다.
할머니네 가게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중 유독 두통이 잦았던 지영이 아주머니라는 분이 계셨다.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 이름의 엄마와 아빠로 불리듯, 한복집에서 일하시던 어른들은 이분을 지영이 엄마라고 호칭하셨고 나도 이걸 따라서 '지영이 아줌마'라고 호칭을 했다. (어린이였던 내가 매번 '지영이 언니네 아주머니'라고 호칭을 해드리긴 어려웠을 거라서 짧게 '지영이 아줌마'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한복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할머니의 부티끄는 엄마를 포함해 솜씨 좋은 직원들이 많다고 공공연히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에 주문이 무척 많았다. 다들 한시도 쉴 틈 없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시며 천을 재단하고 미싱을 돌리고 풀 먹인 다림질을 하며 정성스레 한복을 만들어내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이들 사이에서 나 역시 눈치껏 실이나 자, 천 같은 것을 가져다 드리는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곤 했는데, 그 심부름 목록 중에 지영이 아줌마의 두통약, 게O린 심부름이 있었다.
아줌마가 쥐어주는 돈을 들고는 약국으로 쪼로로 달려가서 게O린 한 통을 사다 드리고는, 약 먹는 내내 아줌마 옆에 꼭 붙어서 궁금함으로 꽉 차 있는 눈을 하고서는,
"쓰↗냐↘~, 다↗냐↘~"
를 연신 물었다고 한다. (아주머니께서 "달다!"라고 하셨으면 나도 달라고 떼를 썼을지도 모른다.)
악의 없이, 정말 그 약이 썼는지 아니면 달았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눈으로 약을 드시는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는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먹성이 어마어마했다. 그 누구보다 먹을거리에 진심이었고, 누군가가 입에 뭘 넣고 있는 걸 보면 그것이 음식이든 뭐든 상관없이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걸 잘 아시는 엄마나 할머니께서는 '아주머니가 드시는 약'마저도 욕심을 내는 어린 먹보를 보며 얼마나 어처구니없으시고 웃기셨을까.
버르장머리 없이 반말을 하는 어린이였음에도, 난 이 한복부띠끄의 유일무이한 귀염뽀짝 어린이였고 '쓰냐 다냐'는 고모할머니의 한복집에서 몇 년간 유행어가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엄마가 재택근무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를 따라 할머니의 한복부티끄에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종종 그 당시에 같이 일하셨던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께서 수다를 나누실 때면 그 수다의 일부에 내 어릴 적 에피소드가 살포시 얹어진다고 한다. 내 이야기가 그분들께 소소한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전해 들으면, 나도 타인에게 엔도르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음에 내심 뿌듯함이 밀려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 할머니의 가게 근처를 지나갈 때면 그때 그곳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 각양각색의 천 두루마리들,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 미싱 돌아가던 소리, 다림질의 열기, 풀 먹인 천의 냄새가 나의 오감을 훅하고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가장 많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달콤한 순간이었다.
2025.08.04.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