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35.

나의 국민학교 담임선생님

by Ellen Yang


마흔을 넘어선 지금,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나 햇수를 세어보니 무려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더라.

(국민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든 난 꽤나 운 좋은 케이스라 생각한다.)


십 년에 한 번 변한다던 강산도 이 정도 세월이면 진즉 두 번은 탈바꿈을 하고 다시 또 변화를 위한 준비 태세를 드릉드릉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심지어 얼굴까지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는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이왕이면 좋은 기억이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아홉 살의 어린이에게 인생살이의 퍽퍽함을 조기교육 해주셨던 분, 국민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시다.




국민학교 1학년 초엽, 전학 갔던 학교에서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가 있다. 학교 앞 구멍가게 딸이었던 나영이.

내성적인 걸로는 어디 가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나였지만 이 친구 앞에서만큼은 첫 번째 자리를 내주어야 할 정도로 조막만 하고 예쁘장한 얼굴에 조용하고 침착했던, 나만큼이나 겁도 많고 눈물도 많던 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마음에도 왠지 모르게 친해져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이는 친구였다.


집도 가까웠고 성격도 비슷했던 우리는 3학년이 되고 나영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작별하기 전까지, 매일 같이 붙어 다니며 떡볶이를 나누어 먹는 말 그대로 '찐친'이었다.(주머니가 가볍다 못해 폴락였던 그 어린 나이에 떡볶이를 사서 나눠먹는다는 건 진심 친했다는 거다!)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을 앞둔 봄방학. 2학년 때도 같은 반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에 둘이 손 맞잡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아직은 추웠던 초봄의 하굣길, 둘만의 기념 세리머니를 치르기 위해 우리의 사랑방이었던 후문 쪽 분식집으로 향했고 특별히 우리를 예뻐해 주셨던 아주머니가 내어주시는 안 쪽 구들방에 내 집 안방처럼 앉아서는, 맵기보단 달달했던 학교 앞 떡볶이와 입천정이 델 것만치 뜨거운 오뎅국물을 호호 불어먹으며 2학년 담임선생님이 누구일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더랬다.




그리고 3월 2일. 드디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서로의 손을 꼭 잡고는 2학년 4반 뒷문을 살며시 열었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나영이가 있어서 1학년 때와 같은 낯섦이 설운 울음을 불러오진 않았다. 누군가가 옆에 있음이 이렇게나 든든하다니.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 한 반에서 지내게 될 친구들은 대충 파악했고, 이제 남은 건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날 시간.

소란스럽던 교실의 앞문이 열리며 새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들어왔고 50개의 얼굴과 100쌍의 눈은 일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리곤 여기저기서 낮은 '헉'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중에 우리 둘도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깐깐하고 매서운 눈빛의 여자 선생님.

제발 아니었길 바랐던 분이 우리의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는 사실에 뭉게뭉게 피어있던 새 학기의 설렘은 입으로 훅 불어버린 거품처럼 사그라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의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는 요즘으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될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학부모 공개수업, 육성회의, 스승의 날, 운동 등등 각종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는 도시락, 선물과 함께 촌지라 불리는 돈 봉투도 심심치 않게 오갔다. 그리고 우리의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촌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순하디 순하셨던 1학년 담임 선생님과는 180도 다른, 학급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선물의 크기, 돈 봉투의 두께와 비례하는 분이었다.


차별의 시작은 학급 반장과 부반장 선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장과 부반장 후보로 지명됐던 친구의 어머니들은 학기 초부터 바지런히 학부모 상담차 학교를 방문하셨거나 육성회 임원직을 맡고 계셨던 분들이셨다. 물론 방문하실 때에는 두 손 무겁게 오셨을 거고, 이는 그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 레벨을 훅 끌어올렸다. 게임으로 치면 아이템 현질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선생님의 안경은 미션임파서블 주인공인 이든의 그것처럼 우리 반 아이들의 머리 위에 0부터 100까지 애정지수 막대그래프를 보여주고 있진 않았을까.)


맞벌이로 매일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시던 나영이네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담임 선생님의 특성(?)을 까무룩 모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학기 초, 부모님의 학교 방문이 있을 수 없었던 우리 둘은 담임 선생님의 관심권에서 저 멀리 벗어나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애정권에 속한 아이들과 같은 실수를 해도 혼남의 온도차가 냉탕과 온탕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돈'이라는 뜰채가 있는 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왜 우리만 미움을 받는 건지 의아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나 억울한(?) 처지에 함께 있다는 동지애로 똘똘 뭉쳐지고 있던 나영이와 나였지만, 스승의 날을 기점으로 우리 둘의 사이에 울타리가 쳐지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그래도 주변에 친한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학교 소식에 파삭하던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늦게나마 딸의 담임 선생님이 범상치 않은 분임을 간파하셨다. 애지중지 첫째 딸이 선생님에게 괜한 미움을 받진 않을까 마음이 쓰였던 엄마는 결국 스승의 날, 그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학교를 찾아왔다. 여느 엄마들처럼 빈손으로 가 아닌, 선물이 들려있었다.(어쩌면 그 안에 선물보다 더 값비싼 봉투가 있었겠지.)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뜰채 안쪽에 걸렸다. 애정권에 든 것이다.

예전에는 선생님께 불려서 국어책이나 산수책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더듬거리거나 틀리면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질 정도로 매서운 불호령이 이어졌지만 엄마의 학교 방문 이후, 그 어떤 실수를 한다 한들 선생님의 입에서는 "아유, 잘했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칭찬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180도 달라진 선생님의 반응에, 무려 선생님의 입에서 거침없이 새어 나오는 칭찬의 말말말에 그저 의아하기도, 안도감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선생님과의 관계는 편해졌지만 편한 감정만큼이나 나영이에 대한 미안함도 커졌다. 왜, 어째서 나만 갑자기 선생님께 예쁨을 받게 된 것이고, 나영이는 아직도 구박덩어리인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영이와 나 사이에 차별이라는 벽이 생겼음을 확실히 알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나영이의 학급번호 끝자리가 그날의 날짜와 같던 날.

산수시간에 선생님은 나영이를 일으켜 세우곤 길이와 무게 단위가 빼곡하게 적힌 산수책 한 페이지를 읽혔다. 가뜩이나 작은 목소리의 나영이는 ㎝, ㎜, ㎞, ㎠, ㎡, ㎢ 같은, 국민학교 2학년으로서는 생경하기 그지없던 수학 단위를 더듬더듬 힘겹게 읽어나갔다.

"센.. 치, 아니 센티... 미터.... 음... 센치, 아니 센티미터 이..?"


이런 나영이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던, 혼잣말이라기엔 너무나 모두에게 다 들렸던 담임선생님의 목소리.

"아니, 쟨 뭐 저렇게 못 읽어?"

그리곤 곧이어 "됐어, 앉아."라는 차가운 말이 따랐다.

나영이 다음 차례로는 본인이 가장 예뻐하셨던 반장 아이를 불러 세우셨고 말이다.


자리에 앉던 나영이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로써 그 당시 나만이 선생님의 애정권에 들어갔음이 확실해졌다. 바로 옆 분단에 거의 붙어 앉아있던 둘 사이가 교실의 끝과 끝만치 멀어져 버린 것 같았다. 학기 초에 눈뭉치만치 똘똘 뭉쳐졌던 동지애는 점점 녹아내렸고, 우리 사이에는 서먹함이 장벽처럼 불쑥 솟아버렸다.




한동안 매일매일 드나들던 내 방문이 뜸해지자 나영이 어머니께서 우리 둘 사이의 이상기온을 눈치채셨다.

그리곤 이내 나영이에게 그간 학교에서 당했던(?) 일들을 전해 들으신 듯했다. 왜냐하면 며칠 후에 나영이 어머니께서 드디어 학교를 방문하셨기 때문이다.


이 한 번의 학부모 면담으로 나영이의 서열이 수직상승했다. 선생님이 그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전과 똑같이 산수책 읽기에 고전한다 해도 선생님은 "그래, 그렇지! 잘하고 있어."라며 나영이를 다독여주셨다. 아무리 눈치가 꽝인 아이라도 '뭐지, 뭐지?' 싶어 옆 친구에게 눈짓을 보낼 정도의 극명한 차이이자 어리둥절한 변화였다.(결국 나영이가 2학년 2학기에는 무려 부반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


이렇게 둘 다 담임 선생님의 애정권역에 입성하는 날이 오자 나영이와 내 사이에 들어섰던 벽은 거짓말처럼 허물었고 다시금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친구와의 우정이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의 갈대처럼 줏대 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신 건 우리의 국민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셨고 말이다.




우리는 3학년이 되었고, 3학년이 되기 직전 겨울에 나영이는 전학을 갔다.

그리고 각자가 속해있던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점점 우리의 국민학교 2학년 시절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갔다.


언젠가 친정집을 가는 길에 나영이네 가게가 있던 자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예전의 그 구멍가게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이, 나영이가 살던 곳에는 샛노란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 부동산이 들어서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같이 배운 그 시절 친구의 소식과 더불어,

아홉 살 인생에게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살짝 찍어 맛 보여주신 선생님의 안부가 무척 궁금해지는 날이었다.




2025.09.05.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