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셋집 무단침임자 (1)
결혼이라는 인생 2막의 테이프 컷팅식을 치른 지 햇수로 13년.
누군가에겐 길기도, 누군가에겐 짧게 느껴질 이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꽤나 많은 이사를 반복해 왔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과 함께였던, 13년의 곱절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의 이사는 고작 세 번에 그쳤다. 그마저도 바로 길 건너편 집으로 옮겼던 국민학교 3학년 때가 마지막 이사였으니 나의 본가(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는 그 자리에서 무려 30년을 넘게 가족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랬기에 당연히 결혼 전 나는 한 곳에 오래 정착해 사는 게 너무나 익숙한, 정착민이었다.
이 정착민의 삶은 결혼 후에 갑자기 껴든 역마살 덕분에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12년 간 무려 여섯 채의 집이 우리의 주민등록등본에 기록되었고, 예전의 정착민은 간데 없이 언제 어디서든 짐을 쌌다가 풀어야 하는 이주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했다.(이러면 심플라이프를 추구할 법도 한데, 우리 부부는 여전히 맥시멀리스트이다.)
생경한 동네들(지금까지 이사 다닌 동네를 지도에 찍으면 큼직한 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제각각의 특징을 한껏 품고 있던 집들은 그마다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들을 잔뜩 안겨주었지만 그중에 단연 우리가 무덤까지도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아닌 '동물'과 집을 가지고 기싸움을 벌였던 사건이다.
결혼 후 우리의 세 번째 보금자리였던 공덕역 근처의 한 아파트.
신혼집의 집주인과 재계약을 가지고 다툼이 생겨서 급하게 이사를 갈 곳을 찾다가 그 동네에 그나마 가장 우리 자금에 맞춰서 이사 갈 수 있었던 주거형 오피스텔 전세계약서에 덜컥 서명을 마쳤다. 오피스텔이라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주거형이라고 내건 곳이니만큼 그래도 살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맞이한 첫겨울, 이 집이 창틀이 서럽게 우는 심각한 결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실내 온도가 조금만 올라도 집의 모든 창문들이 일제히 눈물폭포를 터뜨렸다. 실내온도를 23도로 해도 서럽게 울어대는 창문들을 달래느라 보일러는 꿈도 못 꿨고, 요리한다고 가스레인지를 켜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내가 집에 이렇게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일 년에 네 달을 이렇게 창문에 눈물을 닦으며 살아야 한다고?'
도저히 여기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무조건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부부는 대동단결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예산에 맞는 동네와 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해졌다. 겨울이 오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리 작아도 단지가 조성된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차에 짝꿍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마포 토박이 부동산 사장님이 소개해주신 공덕역 근처의 한 아파트 매물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제 막 겨울에 들어섰음에도 매서운 추위에 온몸이 오그라들던 11월의 늦은 밤.
(밤에는 집 보러 다니는 게 아니라지만, 하루하루 일에 치이며 휴가도 제때 낼 수 없는 직장인은 어쩔 수 없이 해가 멀찌감치 모습을 감춘 밤 시간이라도 집을 보러 다녀야 했다.)
부동산 사장님과 자그마하지만 제법 깔끔하게 잘 정돈된 단지 안을 스을 둘러보고는 이내 사장님의 그림자가 발끝에서 벗어나지 않게 꼭 뒤에 붙어서 낯선 이가 살고 있는 집의 초인종이 눌리는 소리, 출입문이 열리는 딸깍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들어간 집 안. 한 발 들어서자 추위로 온몸이 얼어버린 몸이 그 안의 온기로 스을 풀어졌고 내 긴장감도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리고는 처음 가본 이 집이 나에게 베풀어준 따스함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만다. 질릴 대로 질린 결로라는 녀석의 유무만 간단히 확인하고는 '여기야! 내가 이사 올 곳!'이라는, 너무나 즉흥적이었음에도 너무나 단호한 결심이 들어섰다.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내야 하는 이 중대한 순간에, 왜 난 그토록 감성적이었고, 즉흥적이었던가. 그날의 추위라도 탓해야겠다.)
그리곤 집을 보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중순.
이것저것 재지 않고 계약서에 쾅하고 도장을 찍어버린 세 번째 집에서, 살면서 내 일상을 그려나갈 것이라는 상상도 한 적 없던 낯선 동네에서, 우리 부부의 2막 3장이 시작되었다.
겨울 내 얼어있던 땅에 따듯한 봄기운이 입혀졌다.
거실 창문 너머,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어 삭막하기만 하던 단지 안 풍경에도 연둣빛 물이 들었다. 키 높은 나무들과 키 작은 식물들이 서로 섞여 그만의 연한 초록빛을 뽐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겨울 내 메말랐던 모든 것이 싱그러워지며 그간 내가 꿈꿔온, 주거지에서 보았으면 하고 원했던 장면들이 하나둘 눈에 들기 시작하자 점점 더 이 집에 애정이 샘솟았다.
꽃샘추위의 칼바람이 점차 온풍을 싣기 시작하며 봄이 슬슬 여름을 불러오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요상스러운 꼬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은.
'날이 더워져서인가?'
왠지 냉동실 어딘가에 깊숙이 박힌 채 몇 년간 강제 숙성된 반건조 오징어에서나 날 법한 이상한 꼬린내가 온 집안에서 (특히나 거실에서) 수시로 코끝을 스치기도, 때리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후각이 예민해 인생이 피곤하던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다시금 '이렇게는 살 수 없어!'가 고개를 들었다.
짝꿍에게 대찬 선전포고를 한 후, 마치 강아지가 된 것 마냥 온 집안을 킁킁거리던 나는 스탠드형 에어컨의 물 빼는 호수를 밖으로 내도록 뚫어놓은, 거실과 창문 사이의 구멍에서 그간 나를 못살게 굴던 야리꾸리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체 거실 바닥에 무슨 일이 있는 거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당연히 앞섰어야 했지만, 그때는 그저 이놈의 악취가 사그라들길 바라고 또 바라는 염원만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일단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는 알았으니 에어컨의 물 빠지는 호스와 바닥 구멍 사이에 방향제 한 통을 시원하게 퍼붓고는 그 사이 빈 공간을 솜과 테이프로 꽁꽁 휘감았다. 악취와 영원히 이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 바람과 방법이 통했던 건가. 악취 없는 하룻밤이 지나갔다.
드디어 냄새의 근원을 뿌리 뽑았다며 내 안에서는 승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쳇.' 하는 비웃음을 날리듯,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제는 뭔가 단단히 썩고 있다고 의심되는 냄새에 심지어 방향제의 향까지 더해진... 말도 못 할 악취가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025.09.06.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