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37.

월셋집 무단침임자 (2)

by Ellen Yang

아무래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연차를 내더라도 다음날 바로 악취나 배관 전문 업체를 알아보고 방문을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선잠이 잔뜩 부풀려버린 내 어깨 위 피로인형을 늘어뜨린 채로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수리업체에 연락을 하기 전에 제대로 된 설명을 드리기 위해 다시 한번 냄새의 근원지를 살펴보던 중, 우연히 열어본 안방 베란다 바깥의 에어컨 실외기 쪽에서 지금까지 났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응축된 악취가 코를 뚫고 들어왔다. 정말 말 그대로 코 안쪽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악취였다.




악취의 아찔함 뒤로는 소름 돋는 무서움이 일었던 것 같다. 내 눈에 들어온 에어컨 실외기 밑 검은 빛깔의 수상한 물체 때문이었다. 마치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것 마냥, 하지만 두 손으로 눈과 귀를 가릴 수 없기에 더더욱 심장을 쿵쾅이게 하던 매서운 섬뜩함.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공포와 궁금증 중에 왜 궁금증을 선택하고 가지 말라는 곳을 가는지, 하지 말라는 걸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무서움으로 두통이 왔는데도 이 악취의 원인이 무엇일지 궁금했고, 들추어내고 싶었다. 난 그 당시 나름 4년 차 대한민국 아줌마의 용감무쌍함이 내 안에 들어오길 소망하며 무서움을 애써 누르고는 가만히 고개를 들이밀어보았다. (짝꿍은, 여리디 여린 심성의 짝꿍은 멀찌감치 뒤편에 서서 "뭐야, 뭐야?"를 반복하고 있었......)


세상에. 거기에는 둥지가 있었다. 비둘기 둥지.

그리고 그 둥지 안에는 언제 숨이 달아났는지 모를 정도로(집에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게 대략 일주일 전이니 이미 그 이전에 생을 다했을) 자그마한 아기 비둘기가 까맣게 변해버린 채 구더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난 결국 그날 급하게 연차를 냈다. 이대로 두고는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비위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 더 심약하기 짝이 없는 짝꿍을 앞세울 수가 없어서 집에 있던 주방용 집게와 몇 겹을 포갠 비닐봉지를 만들어 들고는 전투태세를 마쳤다. 그리고는 비장한 마음과 아이템들을 손에 들고 안방 베란다로 향했다.(내 마음속에는 하얀 거탑의 메인테마가 BGM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방 베란다 창문을 열자마자 우리 부부는 ㄱ자로 마주하고 있는 옆 동의, 우리보다 한 층 높은 집 베란다 난간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비둘기 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구나. 너희 둘의 새끼였구나.'

습자지 두께의 안타까운 마음층 위를 백과사전만치 두꺼운 두 번째 공포층이 덮었다.

'지들 새끼랑 둥지에 손을 댄다고 방충망도 없이 열어놓은 창문 안으로 들어와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조용히 혼자 작업하려고 출근 준비를 하라며 돌려보낸 짝꿍을 다시 불러 세워서는 중대한 임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난 실외기 밑을 치울 테니 오빠는 날 비둘기 부부로부터 지키라고. 막대기 하나 들고 내 뒤에 서 있으라고.


내가 실외기 밑에 집게를 넣어 (실외기 밑 공간에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딱 붙어있던) 둥지를 떼고, 새끼 비둘기의 사체를 치우는 걸 내려다보고 있던 비둘기 부부는 계속 '구구구'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혼잣말로 "알았어, 알았어! 빨리 끝낼게, 이리로 오지 마."를 연신 내뱉었고, 짝꿍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우리 집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얄팍한 막대기를 내 뒤에서 휘휘 휘둘렀다. 그리고 이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다행히도 비둘기 부부의 공습 없이 사건 현장을 얼추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침나절에 큰 사건현장 하나를 수습하고 나니 피로감이 엄습해 왔지만, 아무래도 치우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미래에 또다시 찾아올 수 있는 똑같은 사건의 싹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이내 실천으로 옮겨졌다.(내가 이렇게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었다니!) 새로운 전투를 앞두고는 엄지손가락에 모터를 장착한 채 인터넷 검색에 돌입했다. 그리곤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1. 비둘기는 주로 높은 바위틈이나 절벽 틈새에 둥지를 트는데, 도심에서는 베란다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2. 한 번 둥지를 튼 곳은 (이변이 없는 한) 자신의 평생 보금자리라 여긴다 하니, 비둘기 부부와 우리 부부는 서로의 집이자 둥지의 침입자였다.

3. 그리고 세상엔 나와 같은 상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들, 이미 비둘기 퇴치 전문가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


'와, 이거 쉽지 않겠는데?'

하지만 난 의지의 한국인이다. 비둘기 부부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 집을 내어줄 수는 없지. (좀 치사하긴 하지만, 너희는 월세도 내지 않잖아!) 그리고는 온라인 쇼핑몰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기성 퇴치용품들은 대부분 난간 위에 앉지 못하게 막는 용도라 우리 집 같이 실외기 밑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비싸게 샀는데 제 값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난 우리 집 맞춤형의 비둘기 퇴치용품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실외기 밑에 그들이 둥지를 틀 수 없게 할 다양한 방법과 구조물을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문득, 캠핑용 고기 굽는 철망이 떠올랐다. 이걸로 실외기를 덮을 사각틀을 만들고, 철망 곳곳에 전선 타이를 심어서 뾰족뾰족하게 해 놓으면 더는 비둘기가 얼씬도 못할 것 같았다. 뇌에 전구가 반짝이며 켜진 것 같던,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발은 근처 시장의 철물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철물점 큰 손처럼, 사장님께 "여기 있는 고기 철망 다 주세요!"를 외치고는 무거워서 끙끙대면서도 신나는 마음에 집으로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는 비둘기 부부가 물어뜯어 부수지 못하게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견고한 틀을 지어갔다.

오후 내내 이어지던 지난한 작업이 마침내 마무리되었고, (구조물을 설치할 동안 비둘기 부부 퇴치 역할을 맡아줄) 짝꿍의 퇴근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면서 주변 집들의 베란다에 눈이 갔다. 그리곤 깨달았다. 다른 집들 몇몇 베란다 난간에 뾰족 거리는 구조물들이 있음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웃들에게서 묘한 동질감과 전우애가 느껴졌다.




내 일생일대의 역작인 구조물(이사 올 때는 다음 세입자분들을 위해 고스란히 두고 왔다.) 덕분에 더는 비둘기 부부와의 잊지 못할 동고동락은 끝낼 수 있었다. 한동안 우리 집 난간 앉아서 집을 내놓으라는 항의성 '구구구'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기는 했지만. (미안하지만 그럼 너희도 월세를 보태렴.)


한 번씩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그전에 살던 집의 단점이 반드시 체크해야 할 리스트에 들어가곤 한다.

무려 여섯 번의 이사를 다닐수록 점점 더 길어지는 우리 부부의 체크리스트에는, 아직도 단연 '실외기의 위치'가 상위권에 들어있다. 새 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다시 찾아오지 말아 달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2025.09.07.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