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지하철(2)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나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아래쪽, 경기도 남쪽에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까막히 몰랐었다. 여기는 경기도니까, 4호선 아랫부분이니까 출퇴근길이 좀 멀더라도 자리에 앉아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웬일? 이사 후 첫 출근에서 이 한낮 부질없던 기대는 와장창 깨져버렸다.
이미 내가 탈 때 즈음에는 지하철 칸칸이 모두 포화상태였다. 특히나 출퇴근 시간대에는 지하철이 제가 가지고 있는 운행시간표를 가볍게 무시하며 '와, 이건 선 넘는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예 한동안 오지 않거나, 또는 갑자기 몇 대가 우르르 이어오는 (시간약속에 예민 쩌는 나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상황도 어렵지 않게 맞닥뜨리곤 했다. 이럴 때면 정말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하철 칸에 몸을 겨우 욱여넣어야 했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30분을 넘게 서있다 보면 (사람들과의 불편한 신체접촉으로 인한) 짜증 → (내가 왜 여기까지 이사를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분노 → (이렇게 가다 보면 어쨌든 내리기야 하겠지라는) 해탈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개코인 내가, 이렇게 사람으로 빵 터져버릴 것 같은 지하철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냄새"이다. 여름에는 땀 냄새, 겨울에는 외투에 배인 지난날 회식자리의 냄새, 그리고 (이 정도면 향이 아니라 냄새에 속할법한) 찌인한 향수 냄새... 하지만 그중의 제일은 방귀냄새이다. (사실 오늘 출근길에도 방귀폭격을 당했다. 아오!!!)
종종 누군가로부터 스멀스멀 피어 나와 콧구멍에 잔펀치를 날리며 괴롭히는 방귀 냄새. 당최 어디서 오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어쩔 땐 내가 의심을 받진 않을까 싶어 괜히 움찔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비집을 틈도 없이 사람으로 빼곡한 밀폐공간에서 방귀는 좀 아니지 않습니까!’ 소리 없는 아우성이 퍼지는 내 속만 시끄럽게 요란해질 뿐이다.
냄새에 색깔이 있다면 짙은 갈색이 날 것만 같은 이 고약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질 때면 '아, 그냥 내려버릴까.' 탈출 욕구가 빵 터졌다가도, 이내 이다음 열차가 언제 올지 모르고 제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이 그 욕구를 꾹꾹 눌러주어 잠수하듯 숨을 참고는 빨리 다음 역 출입문이 열려서 바깥공기가 냄새를 희석해 주길 애타게 기다리곤 하는 나의 출근길.
한동안 지하철 4호선에서 있었던 장애인 단체 시위도 출퇴근길의 복병이었다. 사실 그분들도 본인들의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기에 응원의 마음을 가져야 하나 싶다가도, 왜 하필 무고한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택하셨어야 하는가에 대한 불편함이 그분들을 향한 긍정의 마음을 짓누르곤 했다.
4호선이 아예 제자리에 우두커니 멈추어 서서 움직이지 않던 어느 날.
그날은 하필 아침 일찍 업체와의 미팅이 있었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분노와 불안의 이중주로 마음속은 혼돈의 도가니인데 도통 움직일 기미가 없는 지하철. 더는 이렇게 멈춤 상태로 허송세월을 보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움직여야만 했다. 정차 상태로 내내 문이 열려있던 동작역에서 급하게 내려 지하철 여행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회사 옆 역까지 가야 했던 나는 그날 환승만 N번을 거친 후 (출근시간은 당연히 늦었고) 미팅 시간은 겨우겨우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미 에너지는 바닥까지 방전된 상태에서 하루 근무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결국 이 시위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한동안은 전보다 더 이른 시간에 (가뜩이나 출근시간이 이른 편이었음에도) 출근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나왔어야 했다.
언젠가는 4호선 자체가 금정역부터 고장이 나서 아예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적도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사무실 들어가기 전에 커피라도 한 잔 사들어가야겠다며 한껏 여유를 부리며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는데 사람들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왜 역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의아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사에서 방송이 나왔다.
“금정역 열차 선로 문제로 지하철 운행이 어렵습니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사람들이 뛰어나가는 건 당연했다. 한시라도 빨리 근처 버스정류장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버스정류장. 이미 지하철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에 가려서 오는 버스가 뭔지, 어떤 버스가 이 역에서 멈추는지도 볼 수 없었다. 버스를 가려 탄다는 게 사치 같았던 그날 아침. 그냥 오는 버스를 아무거나 타야 했다. 서울 어딘가라도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준다면 뭐든 잡아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버스가 올 때마다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갔고, 여기에서 뒤처지면 버스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몇 대의 버스를 떠나보내고 겨우 버스기사님 운전대 쪽에 간신히 끼여서 탈 수 있었던 버스. 이미 콩나물시루가 되어버린 버스 안에 더는 사람을 태울 수 없다고 판단하신 버스기사님께서는 내가 가는 길에 무수히 많았던 버스정거장에서 내리는 이들을 위한 뒷문만 열어주시고 앞문은 아예 열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버스가 올 때마다 좀비떼마냥 우르르르 버스 앞문으로 몰려와 손으로 문을 두들겨댔다.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던 출근길 아침이었다.
2025.09.16.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