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45.

애증의 지하철(1)

by Ellen Yang


상꼬맹이 시절의 난 자동차나 버스, 트럭을 타면 여지없이 마주했던 반갑지 않은 동반자가 있었다. 바로 '멀미'가 그 주인공이다.

엄마를 닮아 코에 남다른 후각 센서를 장착하고 태어난 탓에 자동차가 뿜어대는 휘발유 냄새는 언제나 나의 비위를 사정없이 건드렸고, 코를 괴롭히는 냄새가 없을 때는 지면의 굴곡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와닿을 정도로 요동치는 승용차나 버스 탓에 속이 뒤집어지고는 했다. 내 멀미가 얼마나 심했냐면, 아빠가 승용차 오너이셨을 때는(사업을 시작하시고는 SUV로 바꾸셨고 내 멀미증상도 좀 나아졌지만) 차로 조금만 길게 간다 치면 악착같이 딸에게 붙어대는 멀미 녀석에 대비하기 위해 내가 앉는 뒷자리 앞에는 무조건 검은 비닐봉지를 준비해 두셨을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은 내 멀미 증상에 대해 균형감각이 덜 발달해서 그런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없어질 거다 등등 멀미에 대한 가설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 나라는 어린이는 어딜 가든 장시간 차를 타야 할 때마다 귀 뒤에 키미테를 붙이거나 마시는 멀미약을 단단히 챙겨서 길을 나서야만 했다. 이렇게 단디 챙겨 붙이고 먹었던 멀미약이라고 딱히 매번 나의 멀미증상을 훠이훠이 쫓아줬던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먹멀미라고, 입에 끊임없이 무언가 오물거려야 멀미기운이 사그라들어서 오징어를 필수품으로 챙겨야 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소용없이 먼산만 보거나 억지잠을 자야만 구역질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런 나에게 차로 열 시간은 족히 걸렸던, 할머니 할아버지댁으로 향하는 귀성길은 '아, 이것이 지옥인가 보다.' 싶을 정도의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어떤 이의 말마따나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서 차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점점 멀미가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오프로드 같은 엉덩이가 절로 들썩이는 비포장 도로만 아니면 어떤 종류의 차든 자신 있게(?) 편하게 탈 수 있는 레벨까지 오르게 되었음이 어찌나 감사했던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직 버스와는 영 사이가 소원하다.

(이용할 교통편이 버스뿐인 곳과 같이) 어쩔 수 없이 버스에게 도움을 청할 때면 버스가 궁둥이에서 내뿜는 특유의 매연 냄새와, 버스기사님의 질주 본능으로 천정에 머리가 닿을만치 덜컹이고 몸이 대중없이 온사방으로 쏠릴 때마다 멀미 친구가 '나 여기 있어!' 라며 옅은 손짓과 눈웃음을 날리곤 한다. 어찌어찌 멀미 녀석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방어를 했다 해도 흔들리는 버스에서 작은 키로 손잡이를 부여잡고는, 넘어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큰 파도 위에서 서핑하듯 다리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몇 정거장만 가도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 이미 나의 에너지는 저 바닥까지 내려앉고야 만다. 이런 연유로 결국 난 아무리 노력해도 버스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딘가를 갈 때 항상 나의 동력이 되어주는 건 바로 지하철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버스에 앉아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이냐고 하지만 낭만보다는 지하철의 안정적인 편안함이 더 좋은 나인 걸 어쩌겠나. 그래서 누군가와의 약속을 할 때도 지하철 무슨 역에서 내리는지, 이사를 할 때도 집이 지하철 역세권인지를 가장 먼저 체크한다. 어딘가에 나를 데려다줄 지하철 편이 있느냐 없느냐는 나에게 사뭇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간을 꽤나 정확히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버스나 자동차는 도로교통 상황에 따라 말도 안 되게 일찍, 또는 말도 안 되게 늦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간 약속에 진심인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일찍 도착하는 거야 당연히 괜찮지만) 이동하는 내내 늦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득 안고 다니다는 게 못 견디게 힘들다. 그래서 도착시간을 꽤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지하철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이동수단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렇게 아무리 지하철을 편애한다지만, 당연히 매번, 매일 탈 때마다 좋을 수는 없는 일.

특히나 내가 4호선 라인에 이사를 오기 시작하면서 지하철과 나 사이의 애'정'전선의 '정'이 '증'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기 시작했다.




2025.09.15.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