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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조형 수업_ 시각적 사고의 훈련

이텐, 알버스, 모홀리나기로 이어지는 조형 교육 실험

by 푼크트

역사적 배경: 전간기 독일의 혼란과 교육개혁의 긴급성


기초 조형 수업(Vorkurs)의 출현은 단순한 교수법의 혁신을 넘어, 20세기 초 유럽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참혹한 종결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닌 사회·정치·경제·정신문화 전반의 붕괴를 의미했다. 독일 제국은 해체되었고,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이 성립되었지만, 이는 민주주의 실현보다는 내적 불안정과 양극화, 극우와 극좌의 충돌,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국가적 수치와 경제적 압박 속에서 위태롭게 출범했다.

정치적 혼란은 곧 교육체계 개혁에 대한 긴급한 사회적 요청으로 이어졌다. 특히 예술 및 디자인 교육 분야는 새로운 사회적 질서 속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사고하고 체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초점이 이동했다. 이 시기의 교육 개혁은 단순히 커리큘럼 조정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인간형(New Man)의 형성을 위한 감각적, 철학적 개입이었다.


독일의 근대성은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 산업화, 낭만주의 미학, 형식주의 예술 이데올로기의 혼합체였다. 그러나 1918년 이후 이 모든 구성은 대중에게 불신받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예술은 더 이상 고상한 미적 유희나 상류 계급의 정서적 특권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와 산업의 메마름을 경험한 인간이 새로운 ‘감각 질서(Sensory Order)’를 재조직하려는 실천적 시도의 장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교육이 단지 ‘기능적 훈련’이나 ‘기술의 모방’이 아니라, 감각과 인식의 재편을 통한 사회적 치유와 재생산의 가능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시각 예술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으며, 전통 미술 교육의 ‘상아탑적 이상주의’는 근대 도시, 기술, 속도, 대량생산의 논리와 극심하게 충돌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 속에서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설립하며, 학교의 존재 이유를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으로 명시했다. 바우하우스의 창립 선언문은 단지 교육기관의 비전을 넘어, 현대성의 조형적 언어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문화운동적 선언이었다.

특히 바우하우스 커리큘럼의 기초로 설정된 ‘기초 조형 수업(Vorkurs)’은 교육적 방법론의 근간이자 이념적 실천이었다. 기초 수업은 미술대학의 전통적 데생 교육이나 원근법 연습, 비례학의 습득을 거부하며, 형태, 재료, 색채, 리듬, 구조에 대한 감각적 체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즉, 조형 언어를 단지 모방하거나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과 손, 시선과 사고를 통해 체화하는 근원적 훈련이었다.


기초 조형 수업의 등장 배경에는 단순히 미술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 전체의 재건과 미래를 설계하려는 정치적 요청이 내재되어 있었다. 특히 1919~1923년 사이, 독일은 급격한 하이퍼인플레이션, 노동운동의 격화, 프라이코르프(우익 민병대)의 무장 봉기, 스파르타쿠스 혁명, 루르 점령 등 사회적 격동에 시달렸다.

이러한 시기에, 학교는 단순한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민성과 감각능력을 형성하는 정치적 장치로 여겨졌다. 바우하우스의 조형 교육은 “미래 산업사회의 예술가-기술자”를 육성하는 동시에, 파편화된 지각 구조를 재조직하여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하는 감각의 정치학을 수행하려는 시도였다.

요하네스 이텐, 요셉 알버스, 라슬로 모홀리나기와 같은 기초 수업 담당 교원들은 각자 다른 방법론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감각의 해방’, ‘구성적 사고의 계발’, ‘기술 매체와의 감응’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취향의 교육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고 갱신할 수 있는 인식 체계와 신체 리듬의 구조화였다.


전간기 독일에서 조형 언어란, 단지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수단이 아니라,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세계와 다시 연결되기 위한 실천적 언어였다.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수업은 바로 이 ‘새로운 시각성의 윤리학’을 교육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으며, 이는 현대 디자인 교육의 교범이 되었다.

기초 수업의 영향은 울름 조형대학(HfG Ulm)의 과학적 조형론, 시각심리학 기반의 디자인 교육, 미국 예일대학교 디자인 커리큘럼에까지 이어졌으며, 오늘날 디자인씽킹, UX/UI, STEAM 통합 교육 등에서도 그 철학적 유산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텐의 기초교육: 표현주의와 영성의 조형론 (조형 감응의 훈련과 내면의 시각화)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1888–1967)은 20세기 초 전간기 독일의 조형교육 전환을 이끈 선구적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바우하우스 초기 기초 조형 수업(Vorkurs)의 설계자이자 실천자였던 그는, 예술 창작을 단지 형식적 기술 습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구조와 감각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훈련 과정으로 보았다. 이텐의 사유는 단지 개인적 독창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퍼진 표현주의(Expressivismus), 신지학(Theosophie), 신체-정신 통합 운동 등의 문화적 흐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남긴 심리적, 사회적 충격 속에서, 예술이 수행해야 할 과업을 “내면적 정화(Katharsis)”와 “감각의 계발(Sinneserziehung)”로 보았다. 그는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 부임하기 전부터, 스위스와 빈에서 페스탈로치(Pestalozzi)의 전인교육 사상, 게슈탈트 심리학, 마조날리즘(Mazdaznan)의 영성적 심신수련 체계를 학습하고 실험해왔다.


이텐의 수업 전반에는 그가 신봉한 마조날리즘(Mazdaznan) 철학이 깊이 배어 있다. 마조날리즘은 조로아스터교를 기반으로 한 신지학적 신념 체계로, 인간의 신체·감각·사고·정신이 위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훈련을 통해 ‘조화롭게 진동하는 매체’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이텐은 학생들이 예술가로서 창작을 수행하기 전에, 정신의 순화와 감각의 예민화, 그리고 형태에 대한 직관적 통찰력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그의 수업 초반에는 명상, 호흡 운동, 체조, 자율 드로잉 등의 비정형 활동이 포함되었으며, 이는 학생 개인의 내면 상태를 점검하고 조형에 앞서 감응의 감각을 여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텐은 창작의 본질을 “fähigkeit(감응성)”이라 불렀으며, 이는 단지 감각 기관의 예민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나 자신이 어떻게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에너지적으로 연동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감각이었다.


이텐의 가장 유명한 이론 중 하나는 ‘색채 대비 이론’(The Theory of Color Contrasts)이다. 그는 색채를 단지 물리적 파장이나 장식 요소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각각의 색은 에너지적 성질과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는 생리·정신적 매체로 보았다. 그의 7가지 색채 대비_명암 대비, 순색 대비, 차가움/따뜻함 대비, 보색 대비, 면적 대비, 질감 대비, 동시 대비_는 시각의 감성적 변화를 구조화하기 위한 훈련 체계였다.

예를 들어, 이텐은 빨간색과 녹색의 대비가 유도하는 심리적 긴장감을 통해 시각적 리듬을 훈련하도록 했고, 같은 색조 안에서의 ‘온도 차이’를 감지함으로써 색채의 촉각적 지각을 계발하려 했다. 이는 단지 색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색채를 통해 ‘느끼고 사고하는 능력’, 즉 시각적 인지의 철학적 훈련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훗날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psychologie),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의 시지각 연구, 색채 심리학(Color Psychology) 등의 이론적 발전에 중요한 선구적 기여를 하였다.


이텐은 색채뿐만 아니라 형태(Form), 선(Line), 질감(Texture), 리듬(Rhythm)에 대한 훈련도 조형 교육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형태를 단지 기하학적 구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 형태가 유발하는 심리적 반응과 정서적 상징성을 탐구하도록 했다. 원은 평온, 삼각형은 긴장, 사각형은 안정이라는 식의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학생 스스로 조형 감정의 해석을 실험했다.

‘형태와 균형’에 대한 훈련에서는, 비례감각, 중량감, 시각적 응집력에 대한 자율적 판단을 요구했으며, 이는 단지 조형 규칙을 따르기보다 지각의 주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상상된 무게(visual weight)에 대한 감각은, 오늘날 UI 디자인의 시각 흐름 설계, 편집 디자인의 정보 분배 원리 등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감각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텐은 교사로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함께 내면을 탐색하는 수행자(performer)로서 존재했다. 그는 교육을 ‘표현적 훈련’이라 부르지 않고, ‘자기 존재의 구성 훈련’이라고 여겼으며, 이는 학습자 개인의 감각-감정-행동-형태 간의 관계망을 구축하는 자율적 조형성의 형성을 지향했다.

그의 기초 수업은 현대 디자인 교육에서 말하는 체화된 학습(embodied learning), 학습자 주도형 창의성 기반 훈련, 비선형적 인식 구조 개발이라는 교육적 프레임과 상통한다. 또한, 오늘날의 디자인씽킹이나 인지기반 UX 훈련 등도, 이텐이 강조한 인지·감성·감각 통합형 사고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텐의 교육 방식은 1923년 바우하우스가 보다 ‘기능주의적·산업 디자인 중심’ 노선으로 전환되면서 갈등을 일으켰다. 그로피우스는 이텐의 영성 중심적 수업이 산업사회에 필요한 디자이너 양성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결국 이텐은 바우하우스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교육철학은 이후 스위스,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디자인 교육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색채 체험’에 기반한 실험 수업, 표현적 창의성 계발 중심의 커리큘럼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교육 모형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버스의 구조적 조형 교육: 반복과 실험, 구조의 감각화


요하네스 이텐의 사임 이후,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수업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 전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요셉 알버스(Josef Albers, 1888–1976)였다. 알버스는 바우하우스의 1기 졸업생이자 교사로, 이텐의 표현주의적 조형관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그것을 구조화된 형식의 원리로 재정의하는 데 주력했다. 이텐이 내면적 정화와 감응을 강조했다면, 알버스는 감각의 정확성과 반복을 통한 시각 구조의 훈련에 초점을 맞추었다.

알버스의 철학은 단순한 형식주의로 환원되기 어렵다. 그는 조형 언어를 "형태의 문법"이라 명명하고, 그 문법은 단지 예술가의 창의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실험을 통해 체계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시지각(perception)의 정제, 형태에 대한 해석 능력, 그리고 시각적 판단의 정확성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 반복적 실험과 엄격한 과제를 커리큘럼에 포함시켰다.


알버스의 교육 방법은 분석적이고 실천 중심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종이, 유리, 철사, 섬유 등 다양한 매체를 직접 다루게 하며, 물질성과 시각성의 상호작용을 체화하게 했다. 특히 종이 접기(paper folding), 절단(cutting), 결합(binding), 꼴라주(collage) 등의 기법은 단순한 장식 훈련이 아닌, 형태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시각적 사고를 훈련시키는 핵심 도구였다.

예를 들어, 종이 한 장을 접고 자르는 일련의 작업에서 학생들은 비례, 균형, 긴장, 리듬과 같은 조형 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구성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무의식적 직관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지각적 논리를 훈련시키는 도식화 과정으로 작동했다. 알버스는 이를 통해 디자인 초심자에게 ‘무엇이 보기 좋은가’라는 감각적 판단을, ‘왜 그렇게 보이는가’라는 분석적 질문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알버스가 강조한 개념 중 하나는 "감각의 정제(refinement of perception)"였다. 이는 단순히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형태와 색, 대비와 구조에 대한 인식의 정밀성을 계발하는 시지각적 훈련이었다. 그는 특히 오류(오차)를 훈련의 도구로 활용했다. 예컨대 두 색상이 실제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보이도록 구성하거나, 동일한 구성 요소를 배열하여 전혀 다른 시각적 무게감을 연출하는 과제를 주었다.

이러한 시각적 착시와 인지의 차이를 반복적으로 실험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시각 체계를 의심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후일 알버스가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진행한 색채 수업 『Interaction of Color』(1963)으로도 이어진다. 해당 수업은 색채의 고정된 정의가 아닌,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지각의 역동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알버스는 조형 교육을 단지 시각적인 훈련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재료(material)가 지닌 물리적 특성과 그에 따른 형태의 제약 조건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 감각을 형성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학생들에게 목재, 금속, 유리, 섬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프로젝트를 할당하고, 재료 간의 물성 차이와 조형 가능성의 차이를 실험하게 했다.

이러한 훈련은 오늘날의 디자인 교육에서 강조되는 '재료 기반 사고(material-driven thinking)', '메이킹 기반 리서치(research through making)' 개념의 시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정보 기반 디자인이 강조되는 시대에도, 물성과 촉각성, 재료 저항의 감각을 내면화한 디자이너가 더욱 유연한 시각 언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버스의 교육은 여전히 중요한 교범을 제공한다.


알버스의 교육은 오늘날의 형태 분석(Formanalyse), 시각 구성 교육(Visual Structuring)의 선구적 모델로 간주된다. 그는 형태를 단지 외형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구조와 긴장도, 반복과 비례의 리듬으로 인식하는 훈련을 강조했다. 특히 반복과 모듈화, 최소 단위의 구성 실험은 오늘날 편집디자인, 인터페이스디자인(UI/UX), 제품 모듈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알버스는 "형태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구성한다"고 말하며, 조형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context), 배열(order),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이는 곧 디자인의 언어적 구조에 대한 이해이며,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을 훈련하는 지성적 조형 훈련이었다.


알버스는 바우하우스 해산 후에도 그의 교육 철학을 미국으로 가져가 블랙마운틴 칼리지와 예일대학교 등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교육은 단지 형태 훈련의 차원을 넘어서, 시각적 비판성, 분석적 사고, 창의적 실험의 통합적 모델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현대 디자인 교육에서 "기초 디자인(Basic Design)"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오늘날의 디자인 스쿨 커리큘럼에서 볼 수 있는 색채 실험, 재료 탐구, 형태 조작 훈련 등은 거의 대부분 알버스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들이다. 특히 UI/UX, 인터랙션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에서도 그의 시각 사고 교육은 여전히 응용되고 있으며, 이는 시각의 해석과 맥락의 인지 능력, 즉 현대 정보사회에서 필수적인 시지각 훈련의 본질을 보여준다.


모홀리나지의 뉴비전(New Vision)과 미디어 조형 교육


라슬로 모홀리나지(László Moholy-Nagy, 1895–1946)는 바우하우스에서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이론적으로 정초하고, 이를 실천적 교육 커리큘럼으로 통합한 선구자이다. 그는 기술 문명이 단순한 도구의 발전을 넘어 인간의 감각 구조 자체를 전환시키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뉴 비전(New Vision)’이라는 시각 혁명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 개념은 기계적 감각 확장을 인정하고, 이를 조형 언어에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즉, 카메라, 영화, 광학 장치와 같은 시지각적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눈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인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문화적 매개물로 간주되었다.

모홀리나지는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수업에 이러한 기술 매체 기반의 조형 교육을 도입하며, 기존의 수공예 중심 미술 교육에서 탈피한 전위적 시각 교육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의 교육철학은 단지 도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지각을 어떻게 확장·재편하는지를 탐색하는 감각-매체의 통합 교육이었다.


모홀리나지의 조형교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광학적 요소의 강조였다. 그는 빛(light), 투명성(transparency), 반사(reflection), 운동성(motion), 시간성(temporality) 등 기존 회화나 조형 수업에서 다루지 않던 시각적 변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로 인해 조형 수업은 정적인 평면 구성에서 벗어나 시간적이고 동적인 시각 경험의 훈련장이 되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빛-공간 조형(Licht-Raum-Modulator, 1930)’이다. 이 작품은 금속판, 유리, 구멍 뚫린 표면 등 다양한 재료가 회전하고 반사되며 빛을 굴절시키는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시간성과 공간성을 조작하는 조형 실험 장치로, 빛과 움직임, 물질과 지각의 상호작용을 교육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한 모델이었다.


모홀리나지는 사진과 영화를 기초 조형 교육의 핵심 매체로 도입하였다. 그는 사진이 단순한 현실 기록이 아니라 시지각 구조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비스듬한 구도, 클로즈업, 과노출, 다중 노출, 반전 등의 실험적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은 사물의 구조와 맥락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영화 역시 단지 내러티브 전달 수단이 아닌 시간을 조형하는 예술로 간주되었다. 그는 영화 속 프레임의 리듬, 카메라 움직임, 시점의 변화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시간적 구성(time-based composition)의 원리를 경험하도록 했다. 이러한 훈련은 후일 미디어 아트, 인터랙션 디자인, 모션 그래픽스 등의 영역에서 근대적 조형 교육의 뿌리로 이어졌다.


모홀리나지의 교육은 전통적인 미술-디자인 교육의 경계를 넘어서 과학, 기술, 공학과의 학제 간 통합을 지향했다.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실험적 물리학자였던 루드비히 힐버트의 이론적 자극을 받았으며,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인지 심리학, 시지각 이론 등을 조형 훈련에 적용했다.

예를 들어, 투명 소재 위에 가해지는 광원의 각도에 따른 색의 분산 효과나, 반사판을 활용한 다중 시점 구성 훈련은 광학적 구성 원리를 직접 실험하며 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후 ‘감각적 실험(Perceptual Experimentation)’이나 ‘매체를 통한 탐구(Research through Media)’라는 디자인 리서치 교육의 기초가 된다.


모홀리나지는 교육을 통해 단순한 기술 숙련이 아닌, 매체적 감각의 확장을 추구하였다. 그는 ‘미디어적 시각성(Media-Visuality)’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눈이 더 이상 인식의 유일한 매개체가 아님을 강조했다. 즉, 카메라의 렌즈, 스크린, 투사장치 등은 인간의 시지각을 기계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하며, 새로운 차원의 조형 언어를 창출하는 감각적 확장기로 작동한다는 인식이다.

그에 따라 기초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형태, 색, 구도 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접촉하면서 시지각 능력 자체를 재조직하고, 새로운 감각 체계를 구축하는 훈련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곧 현대 디자인 교육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 정보디자인,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의 학문 분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모홀리나지는 바우하우스를 떠난 후 미국 시카고에서 ‘뉴 바우하우스(New Bauhaus, 후일 시카고 디자인 인스티튜트)’를 설립하여 그의 교육 철학을 지속하였다. 그곳에서는 영화, 타이포그래피, 산업디자인, 사진, 재료과학 등을 통합한 종합적 디자인 교육 모델이 시도되었고, 이는 미국 현대 디자인교육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미디어 디자인(media design), 인터페이스 디자인(interface design), 디지털 아트(digital art) 분야에서 모홀리나지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교육적 실험은 단지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감각과 기술의 경계를 해체하는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디자인 교육이 기술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흐름과도 궤를 같이 한다.


라슬로 모홀리나지는 기초 조형 교육에 빛, 시간, 운동, 투사 등의 광학적 요소와 기술 매체를 도입함으로써, 전통적 예술 교육의 지평을 확장했다. 그의 ‘뉴비전’은 단지 시각적 실험이 아니라, 인간 감각구조에 대한 비판적 탐구이자, 기술문명 속 조형 언어의 재정립 시도였다. 그의 교육철학은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디자인 교육과 미디어 아트 이론에서 여전히 핵심적 좌표로 작용하고 있다.


기초 조형 수업의 통합적 의미와 교육사적 전환


기초 조형 수업(Vorkurs)은 바우하우스의 가장 상징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현대 디자인 교육의 기초를 형성한 모형적 체계였다.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의 감성 중심 표현주의, 요셉 알버스(Josef Albers)의 구조적 실험주의, 라슬로 모홀리나지(László Moholy-Nagy)의 기술-미디어 중심 매체교육은 상이한 접근을 취했지만, 그 핵심은 모두 ‘시각적 사고의 구성 원리’에 있었다. 이 조형 교육은 단순한 기술 훈련이나 미적 취향의 함양이 아닌, 시각적 지각 능력의 재조직과 인식론적 기반 위에서 진행된 ‘시각 교양 교육’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교육은 세 가지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작동했다. 첫째, 감성적 계발과 직관 훈련(이텐), 둘째, 재료 실험과 시지각의 조직화(알버스), 셋째, 기술 매체 기반의 감각 재구성(모홀리나지)이다. 이는 곧 감각, 구조, 매체라는 세 개의 조형 축을 하나의 교차 구조로 통합한 것이며, 오늘날 디자인 사고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의 기초적 구성 요소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다층적 훈련은 시각적 감각을 개별 주관의 표현 수단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망과 기술 환경 속에서의 ‘의미 생성 구조’로 확장시켰다. 즉, 기초 조형 수업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볼 것인가’를 중심에 둔 ‘시각적 해석과 구성의 총체적 문법 교육’이었다.


기초 조형 수업은 단순한 예술적 혁신이 아니라, 1920년대 독일 사회가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 속에서 감각의 민주화를 추구한 실천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사회 전반은 과거 제국주의적 권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갈망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 계급 갈등, 도시화, 산업화는 인간의 일상과 감각 경험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우하우스의 조형 교육은 예술을 통한 인류 해방이라는 추상적 이상에서 벗어나, ‘감각의 훈련을 통한 시민적 자율성 회복’이라는 구체적 목표로 귀결된다. 이들은 ‘시민의 눈(Eye of the citizen)’을 훈련시킴으로써, 새로운 시각 질서와 사회적 조형 감각을 확립하려 했다.


기초 조형 수업은 오늘날 ‘디자인 리터러시(Design Literacy)’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는 단지 디자인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시각 기호를 읽고 쓰며, 사회적 메시지를 해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감각적, 언어적, 매체적 문해력이다. 이텐, 알버스, 모홀리나지가 수행한 조형 교육은 바로 이러한 리터러시 형성의 역사적 시발점이었다.

이 조형 훈련은 이후 미국의 뉴 바우하우스, 블랙 마운틴 칼리지, 예일대, 울름조형대학(HfG Ulm) 등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디자인 교육의 보편적 모델로 확산되었다. 특히 울름조형대학은 바우하우스의 감각훈련을 논리적, 과학적 분석 체계로 전환하여 ‘인지디자인(Cognitive Design)’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기초 조형 수업은 디지털 전환기에도 변형된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 UI/UX 디자인, 인터페이스 디자인,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교육, XR 기반 시각언어 교육 등은 모두 바우하우스식 ‘감각의 논리화’, ‘재료의 해석’, ‘구조의 구성’이라는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UI 구성 요소의 시각 계층 구조, 사용자의 시선 흐름 분석, 물성의 상호작용성 설계 등은 모두 ‘시지각 기반 디자인 교육’의 현대적 적용 사례다.

모홀리나지의 ‘뉴비전(New Vision)’은 정보 시각화, 인터랙션 디자인, 미디어아트의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알버스의 형식 구성 교육은 형태 분석(Form Analysis)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 리서치의 전통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텐의 감성 중심 조형 훈련은 최근의 감성 UX, 디자인 심리학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


기초 조형 수업은 단지 서구 모더니즘 디자인사의 한 단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지각과 조형 언어가 어떻게 사회적, 역사적, 기술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특히 바우하우스의 조형 교육은 시각적 감각이 훈련 가능한 인지 체계이며, 기술 및 매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할 수 있는 영역임을 교육적으로 실증한 사례였다.

따라서 기초 조형 수업은 교육사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예술과 기술의 통합적 교육 패러다임

감각-인지-매체 기반의 시각 교육 전환점

시민적 자율성을 위한 감각 훈련의 기초

디자인 리터러시의 역사적 기원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수업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실천적 철학이다. 그것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디자인 교육이란 무엇이며, 감각의 훈련이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지속적 질문 그 자체이다.



* 매거진 'BAUHAUS' 에 추가적으로 아래 주제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바우하우스의 세명의 기초조형 교수의 철학적 충돌과 융합'

(요하네스 이텐, 요셉 알버스, 라슬로 모홀리나지의 교육사상 비교와 이텐의 퇴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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