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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Kim Sep 27. 2024

스타트업에서 기업으로, 이직 후 적응기 1

3개월 동안 체감한 회사 규모에 따른 문화 차이

입사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3개월밖에 안 됐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번 이직이 이전 이직 경험과는 다른, 아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이제 4번째 회사인 현 회사에 대한 회고는 남다르다. 회사 규모, 기업 유형, 문화, 도메인 등 모든 것이 이전 커리어와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사 전부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입사 후 3개월 내내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커리어 고민에 매주마다 정신이 없다.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이렇게 불안정하게 휘청거리며 버텨낼 줄 몰랐다. 낯가림, 낯섦, 새로운 것과는 다른 결의 문제로.


첫 주는 꽤 지루했다. 신규 입사자 포지션은 아직 권한이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감사하게도 이런 지루한 고요함 속에서 내가 무탈하게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팀 동료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덕분에 온보딩 과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었고 환영받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입사 후 2주쯤부터 회사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복지나 동료 등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내게는 꽤나 크리티컬한 문화적 차이가 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전의 내가 경험한 다른 조직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수직적인 업무 문화였다.


많은 회사가 수직적 구조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타트업 시절에도 수평적 문화를 강조했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탑다운 방식의 결정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더이상 나도 주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수직 구조, 즉 탑다운으로 내려오는 최상위 결정권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다. 그럼에도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내부 분위기 상 어렵다는 점이었다.

현 회사는 스쿼드로 일하며 스프린트를 돌리고 애자일을 지향한다고 했다. 실무에서는 지향점과 달랐지만, 그럼에도 초반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외부에서 온 내가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친한 동료 디자이너들과 PO, PM, 개발자들에게 현 상황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며 최대한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전 회사 동료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주변 지인들이 내게 늘 그랬듯이.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초기에는 내가 먼저 오너십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하려 노력한다면 이러한 구조 안에서도 충분히 분위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도적으로 일하려는 나의 노력은 종종 경계에 부딪혔고, 기능 조직 간의 업무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나의 이러한 행동들이 자칫 선 넘는 짓이 될까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내가 유별난 걸까?


그렇게 몇 번의 도전과 몇 번의 논쟁, 그리고 몇 번의 강한 주장이 반복되다보니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나 혼자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서는 내가 이슈 제기한 부분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이 문제를 문제라고 외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무렵부터 굉장히 불안해졌다.


이 불안감은 이직 준비 과정에서도 겪었던 감정이다. 올해 상반기 4개월은 이직 준비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나오고 한 달간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1월이 지나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원할 만한 회사도 많지 않았고 그중 추려서 몇 군데 지원했음에도 서류 통과조하 어려운 곳이 많았다. 이직할 만한 회사는 많지 않았고, 몇 군데 지원했음에도 서류 통과조차 어려운 곳이 많았다. 올해 취업난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몇 년 전이라면 무리 없이 통과했을 것 같은 곳에서도 떨어지니 무력감이 컸다. 다행히도 4월쯤부터 여러 회사에서 연락을 많이 받기 시작했지만 올 초에는 그런 아찔한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 밖에서 현재 시장이 어떤 디자이너를 찾는지 잘 알고 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회사가 나 정도의 경력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했다. 지금 이 방식대로 이렇게 일해도 되는가. 나중에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 냈는지 검증할 수 있는가. 포트폴리오에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롱 텀 커리어를 생각할 때 이렇게 1~2년이 지난 후 나는 성장해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올해 초 이직 과정에서 겪었던 불안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번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하니 심리적 안정감 없이 일을 할 때 계속해서 작업의 이유를 찾는 데 몰두했다.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충족되지 않는 의문을 스스로 되돌아보며, 그 이유와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어떤 스탠스로 일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데에 3개월을 내리 쓴 것 같다. 일을 찾아서 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던 이 전 회사들과 달리 이미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하게 떨어져 내려오는 분위기에서 내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 말이다. 입사 전부터 컬쳐핏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더 큰 규모의 기업을 경험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 보는 업무 방식에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이직 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내 커리어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스타트업에서의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업무 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새로운 회사의 명확한 역할 구분과 의사결정 프로세스 속에서 나의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배운 점이 있었다.





Next Story.

다음 연재에서는 업무 환경 차이와 혼란한 감정 속에서 얻은 배움과 성장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 

https://brunch.co.kr/@eddiekim-works/51



문제 정의와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기록하며 회고합니다. 커리어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커피챗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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