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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 May 31. 2020

AI 인공지능 이야기 #5 - 기본소득과 미래의 삶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개인에게 실질적 자유를 준다. 이 자유가 있어야 비로소 인간만의 고유 가치를 누릴 수 있다.  노년에 빈곤층에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 기부, 봉사, 인권 등의 가치를 엿볼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하고 고도화되면서 점점 당신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기본적인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가치"는 의미가 없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가 동물과 기계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이는 지배 당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사회와 인공지능을 논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기본 소득"이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기본 소득제"가 도입되어 일정 수준의 생계가 보장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한 기본적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되는 것이다.




기본 소득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기본 소득"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미국에서는 1963년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빈자들의 행진’에서 인종 및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제출했다. 1968년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 폴 새뮤얼슨, 존 갤브레이스 등은 국가에 의한 소득 보장을 청원하기도 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마이너스 소득세 형태로 가구당 연간 1600달러를 보장하자는 안을 냈었고,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은 1인당 연간 1000달러의 기본소득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공약들은 무시되거나 철회됐다.


아직까지 찬반의 논란은 있지만, 북유럽 핀란드에서 진행한  "기본 소득"에 대한 실험, 미국 대통령 선거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보편적 기본 소득제에 대한 논의,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각 국가별로 시행된 국가 지원금 등을 우리는 이미 접해 왔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정보 보조금은 일회성으로, 경제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발생 자체가 모든 국민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국가에서 보장해 주자는 취지에 출발한다.



기본 소득에 열광하는 이유


"기본 소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나 주장이 존재한다


첫 번째, "보편적 기본 소득"에 열광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본인들의 방어기제로 활용하고자 이 제도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기술로 일자리를 잃고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신기술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어느 순간에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세금을 내더라도 "보편적 기본 소득"를 지지함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본인들은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고,사회적 공감이나 소득 분배와 같은 무거운 주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면 된다.  자본주의 시장에 익숙해 있는 미국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면 일정 부분 이해된다. 


두 번째, 소득 분배의 당연한 수순이라는 논리이다.  미래 사회는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소득이 분배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새로운 복지와 분배 실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국가의 예산과 인력은 늘고 있지만, 분배와 복지는 아직까지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국민적 합의가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소득 격차 즉 부의 불균형이 계속될 것이다. 


이들의 주장하는 소득 분배의 논리는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 사회가 벌어들이는 돈 중 상당액은 공동의 자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사람들이 고용을 통해 받는 임금이 과거보다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자동화와 로봇기술을 발전으로 고용은 점점 불안해진다.  더군다나 기업들은 점점 더 전통적인 방식의 고용을 피하고 있다.  


대신 프리랜서 형태의 일거리가 늘고 있다.  동시에 자유로움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다른 방법으로 기본적인 생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역할이 커지면서 행정 효율성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계와 인간적인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정말 기본 소득제가 실현될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각 국가마다 시점과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기본 소득제"는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는 장담할 수 없다.  커즈와일이 주장하듯 AI가 인류의 두뇌를 추월하는 지점 즉 "특이점"을 넘어서는 2040년 이후가 될지, 초지능이 등장하는 앞으로 50년 후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만연하고, 글로벌 경제전쟁에 따른 경기 침체, 국가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점점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지난 100~200년 동안은 우리는 남성 중심의 소득 분배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아버지가 직장에 취직하여 4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소득을 얻게 되는 그런 구조 말이다.  어떻게 보면, 월급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부를 나눠 갖는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 또는 성과에 따른 공정한 월급이라는 개념은 완전한 환상인지도 모른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성과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만든 것인가?


따라서, 인공지능을 포함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으로 발생하는 이익은 그 데이터를 제공한 전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데이터로부터 나오는 부는, 모두에게 귀속된 공유의 부로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생산한다. 서로를 연결하고, 서비스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데이터를 생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데이터의 첫 제공자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데이터가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공장, 로봇 그리고 데이터로 만들어낸 막대한 부를 개인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나눠야 할지, 열린 마음으로 깊게 논의하고 대안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우리 삶의 미래는?


미래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특권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만이 이 사회를 움직인다.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 번째, "기본 소득제"가 도입되어 생계가 보장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수많은 이들이 본인들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것이고, 이 분야에 준 전문가로서 재탄생할 것이다.  이러한 준 전문가 집단을 통해 개인의 취향과 존중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가 가속회 되면서 좀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개인의 세분화된 문화 즉, 일과 취미의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창조물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번째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결국 기술혁명이 가져온 풍요의 시대는 우리에게 ‘일’과 관련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앞으로 인간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렇다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보수가 낮더라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비영리 활동이나 종교 활동, 문화예술 활동 등이다.  "기본 소득제"가 시행된다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시간을 가지고 학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 모두가 획일적인 스펙을 쌓을 필요가 없고, 같은 방향의 목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목표를 찾아갈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봉사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지금까지 봉사라고 하면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가 있다면 종교생활 가운데서 봉사를 한 적이 전부일 것이다. 주의를 돌아보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역사회는 많다.  한 분야에서 10~20년 이상 경력이 있는 능력 있는 인재를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이다.  이를 효율적을 운영하기 위한 "기관"과 "조직"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단순히 무료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최소한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하면 좋을 것이다.  소속감과 안정감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 외 추가 수익을 얻는 개념이다.


네 번째,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조직적인 시민 활동이 필요하다.  기술로 만들어진 미래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변할까? 모두가 예상하는 데로 자유는 존재하겠지만, 기술로 인해 조금씩 통제될 것이다.  아울러 "일자리"와 "불평등"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래 사회의 이슈와 문제점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 조직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조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피고, 비교 검토하여 글로벌 관점에서 뒤처지지 않고, 균형감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조언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과 놀이의 경계가 느슨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인간만의 "창의성과 "공감능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동물이나 기계는 넘보지 못할 바로 그런 것이다.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노는 것이다.  20대까지는 부모님 밑에서 학교를 다니고 배운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일하고 노인이 되면 은퇴해서 공기 좋은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는 그런 삶이 아니라, 평생 일하고, 놀고 배우는 과정을 반복해야 우리의 삶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새로운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찾고, 만들어 내야 한다.  




요즘 인기 있는 유튜브나 블로그 글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모두가 공감하는, 어찌 보면 소소한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은 콘턴츠가 인기다.  그동안은 부끄러워서 감추면서 살아왔던 나의 아픔들, 재미없을 것 같았던 나의 소소한 일상, 음지에서 힘들게 고생했던 나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예상외로 높은 조회 수가 나온다.  


대단한 정보를 전달을 할 필요도 없고, 멋지고 고상하고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 필요도 없다.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정리한 콘텐츠에 우리들은 "공감"한다.  "공감"하면서 동시에 "위로"받을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미래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이 될까?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제는 봉사활동이나 소일거리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높은 자리에서 어려운 결정을 하고, 회사의 크고 거대한 비전을 나의 비전과 동기화하여, 회사와 함께 공동운명체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변화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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