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 어?! 살아왔네?!"
눈이 퀭한 창백한 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전히 힘은 없어 보였다.
" 응. 살아 돌아왔어. 어제 일 고맙다고."
아침에 진이 기숙사 우리 층으로 내려왔다.
커피를 내려 주고 싶어도 커피가 없다.
따뜻한 보리차 밖에.
" 보리차 오랜만이다. 나... 폐가 한쪽 안 좋아.
기능이 약해. 그래서 건조한 날 더 심해."
"수술하면 낫는 거지? 그 외 이식하면..."
" 아... 응? 아〜! 신장(kidney)?! No way!"
신장하고 순간 헷갈린 것이다.
진이 숨 넘어 가게 웃어 겨우 진정시켰다.
" 진, 요즘 히로하고 자주 얘기해?"
진은 졸업 시즌이라 그렇다 얼버무렸다.
그의 얼굴 뒤에서 세실리아가 느껴졌다.
" 응..가끔 전처럼 딤섬 하러 《만다린 레스토랑》 같이 가자구."
진은 히로에게 전화하겠다며 돌아갔다.
토요일 오후에 히로가 소개해주는 분은 히로의 아버지였다.
퀘벡에서 일정을 마치고 일본에 귀국하기 전에 사스커툰에 들른 것이었다.
공항 출국 게이트에서 걸어오는 동양인 남성을 향해 히로가 손을 흔든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하고 외모에 놀랐다.
히로와 전혀 안 닮았다.
아버지는 나에 대해 아는 듯 반갑다며 인사했다.
히로의 차 안에서 짐 정리한 후 지인들과 블루베리 농장에서 모임이 있다고 했다.
캐나다에 온 이유, 나의 가족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다. 간결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또 다음 질문을 계속 만드는 연결된 형식이었다.
도착한 사스커툰 블루베리 농장은 금요일 오후 시간이지만 인기였다.
신선한 베리는 잼, 쥬스, 케이크, 리큐르까지 그 수와 종류가 엄청났다.
바스켓을 들고 블루베리를 먹으면서 따고 또 따면서 먹으면서. 안토시아닌이 보통의 블루베리 보다 농후해 히로의 아버지 연구실에서도 주목하는 농작물이었다.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지금 캐나다에 있음을 잊어버릴 정도로 나의 위치가 낯설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히로는 이곳 일본인 커뮤니티에서 그다지 나서는 편은 아니었지만 수십 년 전 그의 아버지가 이곳에 교수로 부임 왔을 땐 일본인들의 모임이 주말의 일상이었다고 했다.
한국인이라는 차별된 색안경을 쓰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한국은 일본보다 10년 더디고, 일본은 미국 보다 10년 더디다는 노년층의 고정관념도 듣게 되었다.
이야기 주제는 '일본인은 세계적 자랑거리이며 일본인으로 태어나 다행이다'였다. 노벨상 수상자, 일본인 MLB Player, 세계적 브랜드, 서비스 마인드의 고급화등등 아마도 이들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듯 서로가 서로에게 칭찬과 자랑이 끊김 없었다.
언어는 일본어였다. 가끔 나를 인식한 듯 영어를 섞어 말하기도 했다.
그때 스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일본인 남자가,
" 너도 일본어 배워야겠다."라고 내게 말했다.
" 영어로도 충분한데."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 어린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히로가 말을 가로채며,
"아! 사스케! 일본어 정도는 금방 말할 거야. 엘리아는 언어습득이 빠르니까. 일본어 정도는 간단하니까, 그렇지?"
(사스케는 사스커툰에서 태어난 일본인데 부모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나에게 되묻는 히로의 질문에 난 미소로만 답했다.
무슨 뜻인지 묻기에는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농장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느라 히로의 아파트에 잠깐 들렀다.
아버지는 카페트에 바닥에 앉는 것이 불편하신지 벽에 기대어 히로에게 물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Canada로 돌아오면요?"
" 그건 힘들구나. 둘 다 나이도 많고 , 주택 구입한 지 얼마 안 돼. 내가 이번 연구에 중요한 역할이고... 히로가 일본에서 직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니?"
" 음.... 생각 좀 해 보고 돌아갈 때까지."
두 사람 대화는 영어였다.
히로가 나를 기숙사까지 바래다줄 때 문 앞에서 인사를 드렸다.
" 일본에 놀러 와요. 얘 엄마한테 얘기할 테니"
" 감사합니다."
차 안에서 히로에게 말했다.
" 일본어를 왜 배워야 해? 영어도 잘 못하는데"
히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엘리아 영어는 빨리 배웠잖아. 뭐... 내가 좋은 튜터(개인교사)지? 음. 금방 아니더라도 일본에 와서 인사 정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좋잖아."
아버지가 원하는 아들의 삶은 안정된 대기업에 들어가 가정을 이루고 건강한 삶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들이 원하는 삶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 보다 대자연이 주는 평안한 하루하루 가족들과 감사함을 나누는 삶이었다.
두 남자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기 전에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중간점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사람과 행복하기를 허락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노후를 위한 일본의 직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많은 갈등이 잠재되어 있음을 후에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