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가기 전에 각자 귀국 준비를 조금씩 시작했다.
진은 치과의 공부를 하기 위해 세실리아와 토론토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지나에게 들었다.
진과의 사이가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 어떻게... 그렇게 돼버렸는데." 라며 지나가 말해 더 이상 둘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루는 히로가 진에게 돌려줄 책이 있다면서,
같이 가자 며 기숙사로 왔다.
진은 같이 들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 Well. well.well. 이게 누구야? 둘이 웬일 인가?"
건들건들한 말투로 웃으며 반겼다.
진의 방도 이삿짐 더미로 앉을 곳이 없었다.
책꽂이에는 여전히 황금빛 찬란한 묘오한 얼굴의 개인형이 앉아 있었다.
" 얘는 누구야?" 했더니, 진이 무표정이 되었다.
" 이거 '경'이 준거 아냐?" 히로가 답했다.
경?
산더미 같던 책더미의 한편에 개인형은 다리를 꼬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 혹시 버리는 거면 내가 가질께."
히로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어...." 하고 진은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했다.
" 그럼 나주라. 헤어지는 선물로."
그러자 진은 나를 쳐다보더니
" 그래... 리 가져. 줄께. 그러니까 잘 돌봐줘."
진이 말했다.
"흥! 차별하는군."
삐진 표정으로 히로가 웃었다.
곧 세실리아가 온다길래 우리는 인사를 하고 진의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히로에게 물었다.
이 인형의 원래 주인인 '경'에 대해서.
'경'은 진이 몇 년 전, 한국에 놀러 갔을 때 잠깐 일하던 일터의 동료였단다.
그녀도 ' 진 '처럼 이민 세대.
뉴욕에서 한국의 어학당으로 연수를 갔다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극단의 내한 공연 크루로 진과 참가하게 되었다 했다.
'경'이 얼마 전 사스카툰을 방문했을 때 이 인형을 갖고 왔는데 세실리아의 존재를 알게 된 듯하다고 히로는 말했다.
이 인형을 포기한 의미는...
'경'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인형을 들고 얘기를 듣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세실리아가 안에 있었다.
히로가 모르는 척 하자 세실리아가 먼저 순간 얼은 표정이었다가 활짝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곧 진이 준 인형으로 시선이 향했다.
" 리 언니. 그거 진 인형 아니야?"
나는 헤어지는 마당이라 애를 입양했어라고 말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 어머! 나한테는 안 주더니" 하고 크게 웃었다.
뭐지 크게 웃는 이유는?
'경'의 흔적을 본인이 아닌 내가 대신 없애주기 때문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히로가 약간 격앙된 말투로 내게 말했다.
" 제하고 말하지 말랬잖아. 방금 하는 행동 봤지?!"
순간 나는 놀랐다.
그럼 내가 무시하냐고 했더니, 누구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지는지 엘리아는 왜 그걸 모르냐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런 애 때문에 다투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왔다.
방에 올라와 히로의 행동이 생각났다.
처음 보는 히로의 화난 얼굴이다.
언제였던가?
중학 3학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말이 정말 잘 통하고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던 친구가 있었다. 다른 이의 간섭으로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는 이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히로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시간 좀... 줄래?"
방에 돌아와 반짝반짝 윤이 나는 황금빛 누런 개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네 이름부터 지어야겠구나. 개똥이?! 어때?
막 불러지는 이름이 오래 산다고, 옛날에 한국에서 어른들이 그랬어. 히로와 오래오래 친하고 싶은데.
개똥아. 히로에게 뭐라 말하지, 어떻게 말하지?"
가만히 보니 이 개똥이는 입이 없는 아이였다.
" 너 답답했겠네. 마음의 소리 들려줄래?"
.....
' 내가 생각이 짧았다고 해.
그리고 미안하다고.. 마음 그대로 전해봐.'
개똥이의 목소리일까.
내 마음의 목소리 일까.
그래, 빙빙 돌리지 말고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자.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 남을 위한 선택이 아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