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엘리아의 일기

Go for broke

by Elia
일단 부딪혀 보자
(Go for broke: 当たって砕けろ)
성공일지 실패일지 모르지만 일단은
부딪혀 보자.
하와이의 도박용 속어로, " 약간의 가능성에 걸어 돈을 모두 쏟아 넣는다 "는 의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 '제442 연대 전투단'이
' Go for broke '를 슬로건으로 싸웠다.



한 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기말고사도 마무리되자 학급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가?

강사님과 모두가 원탁에 둘러앉아 수업 내용 아닌 모든 이야기들을 꺼냈다.

" 강사님, 결혼은요?"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 네, 결혼... 했었습니다."

이 답변에 "아...." 하는 반응과 무슨 말인지 모르는 반응으로 갈리었다.

한 학생이 " 지금은요?" 하니,

" 지금은 아들과 함께 삽니다."라고.

한동안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 알았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단 한 사람만 못 알아 들었다. 요한이 그게 무슨 뜻이냐며 양손을 펼쳐 강사님께 제스처를 보냈다.


강사님은,

" 결혼은요? 하고 물었죠? 결혼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들하고 삽니다."

요한이 두 눈만 껌뻑이자 제일 어린 사야가 " 이혼하셨다고!" 하고 답을 말했다.


그제야 모두가 이해가 된 듯했다.

강사님이 갑자기 나를 보시며,

" 이 상(李さん)은 약혼자를 어떻게 만났어요?" 하고 질문을 던졌다.

강사님을 포함한 모든 눈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비스듬히 옆으로 반 누워있던 사야가 평상시 말도 안 걸더니 똑바로 앉아 내게 물었다.

"약혼했어? 언제? 어디서? 누구랑? 일본 사람?"

요한은 얼굴이 벌게져서 "약혼했다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앉아 있던 구자비에르가 웃음을 참으며 요한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국말은 가끔 조선족 출신인 '한'이 오늘 숙제가 뭐냐고 묻는 정도가 다여서 나는 다른 이들과 개인적인 대화는 거의 나눈 적이 없었다.

다만 수업을 열심히 쫓아가 좋은 성적을 받아 하루빨리 일본이란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히로를 위한 감사의 표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목시계를 보고 케런이 재촉했다.

" 10분! 10분 남았어. 어떤 사람이야?"

나는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 질문받은 내용들을 순서로 답했다.

" 한국에서 공부 마치고 음악치료학을 배우러 캐나다로 유학을 갔어요. 그곳 대학에서 지금의 약혼자를 알게 됐어요. 국제 학생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서로 친하게 되었습니다.

에.... 또, 졸업 후 약혼자는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고 현재 저는 그의 부모님 집에 있습니다."

모두들 흥미진진한 둣 경청했다.

교생 실습 갔을 때 선생님의 연애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는 아이들 같았다.

말이 끝나자 지금까지 수업에서 했던 프레젠테이션 중에서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강사님은 활짝 웃으며 ,

" 아.... 로맨틱해!" 하며 물개 박수를 쳤다.


다행히도 중급 과정에서 우등상과 작문상을 받아 다음 과정은 통과되었다.

부상으로 받은 도서권을 잔뜩 들고 히로와 서점에 갔다. 교재 말고도 히로가 좋아하는 역사책을 선물했다.

카페에 앉아 히로에게 물었다.

일본에 돌아온 게 행복하냐고. 말없이 싱글벙글 책만 보던 히로가 나를 보며 말했다.

"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버지가 혈액암이야.

누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걸 좋아해도 그건 자기가 편하니까. 나중에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출퇴근 시간이 몇 시간씩 걸리면 나도 지칠 거야. 엘리아는 어때? 일본에서 살기에."

나는 답했다.

" 학교와 집 외엔 잘 모르잖아.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용돈도 되고."

히로는 고개를 저었다. 일본인 중에는 외국인이나 외국에 대한 선입견이 많아 힘들 거라고.

혹시 히로가 회사에서 그런 입장인가 물었다.

많이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하기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교에 돌아가 공부도 더 하고 싶고 넓은 자연도 다시 보고 싶고 그림도 마음껏 다시 그리고 싶다고.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방학 내내 집에 있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하고 마지막으로 묻자, 히로는 정 그러면 힘들지 않은 아르바이트 해보라 하였다.

지금까지 힘든 아르바이트도 해 본 적 없는데 곧 그만두겠지 하는 말투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과 일하는 경험도 나쁘진 않다. 일단은 부딪혀 보자 마음이 생겼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말이 있다.

불교 경전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로,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분을 만지고 자신이 느낀 대로 코끼리를 묘사하는 이야기이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절구처럼 생겼다고 말하고, 꼬리를 만진 이는 동아줄, 코를 만진이는 큰 뱀이라 한다. 사물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아는 듯이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 가지고 전체인 듯 말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바른 눈과 판단은 내가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산하인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식재료부터 일본 전통으로 내려오는 모든 음식들을 키친에서 만들고 개발하고 테이스팅 하는 작업이었다.

무역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파트 매니저가 본사로부터 지시받은 그 달의 주목 상품 리스트를 생산하고 관리하였다.

출근하고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마무리를 지을 때 부분장(部分長)이 큰소리로 ,

" 당신 좀 여기서 일하는 거 힘들겠다." 했다.

나는 불합격 인가? 이제 와서? 보통 이런 건가?

부부분장(副部分長)이 탈의실까지 나를 따라와 이유를 물었다. 첫날부터 재고관리 파악, 용기의 사이즈를 암기 못해 그런다 하니, 그녀는 웃으며 첫날인데 그걸 어떻게 다 하냐며 걱정마라고 했다.

나는 " 제가 여기 안 맞는 듯 말씀하시는 데 저 해고인가요?" 했더니,

" 아니에요, 채용기간 3개월은 준비 기간이라 걱정 안 해도 돼요. 본인이 그만두지 않는 한. 모르면 꼭 누구든지 붙잡고 물어보고 업무를 몸에 익히면 돼요." 라며 주머니에서 작은 포장된 무언가를 내게 주었다.

마들렌이었다. 얼마 전 여행 갔다가 사 온 거라며 먹고 힘내라며 미소 지어 주었다.

마들렌(madeleine)은 밀가루, 버터, 달걀, 우유를 넣고 레몬 향을 첨가해 구운 프랑스의 티 쿠키(tea cookie)이다.

갓 회사에 입사한 나보다 어린 사람이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선배들은 모두 친절하고 서로를 돕고 배려했다.

자기가 맡은 업무가 일찍 끝나면 다른 파트 동료를 조용히 돕는 모습을 보고 이제껏 보지 못한 일본이란 나라, 일본인을 보았다. 업무의 효율성과 결과를 계산하는 그들의 일처리 능력에 매번 감탄하며 어깨너머 배워갔다.

매주 월요일 조례와 함께 시작했다. 외국인은 나 혼자이지만 설명은 똑같았다. 메뉴를 개발할 때 알레르기 리스트를 넘기며 재료 하나하나 관리부터 재료 재고 관리, 주문까지 모두 사원 몫이었다.

백화점 식품부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요리들은 처음 만나는 음식들부터 아는 음식들도 있었다.

가끔은 오븐이나 용기에 부주의로 화상이나 찰과상도 입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대인 관계였다.

조금씩 일의 순서나 팁이 익숙해질 무렵, 선배들이 한 명씩 퇴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부분장이었다. 재고가 쌓이거나 재료관리가 잘 안 된 경우 결과만 보고 사원들을 질책하는 것이다. 부분장에게 자신의 의견도 차분히 명료하게 전달한 선배도 있지만 말없이 듣고만 있던 사람도 있었다.


초밥(寿司스시) 부분의 선배가 그만두기 전 날 내게 말했다.

"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를 만든다고 내게 처음 초밥(寿司)을 가르쳐준 마스터가 그랬지. 만드는 사람이 마음이 힘들면 그 음식이 독이나 다름없다고. " 하시며 퇴사의 이유를 밝혔다.

보이는 음식이기에 사람을 살리기도 병들게도 하는 음식이기에 만드는 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하기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가자 더 이상 나의 선배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최악의 연말연시를 맞이하게 되었다.

Have the worst holiday season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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