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기 위한 첫 단계, 불 속에서 강해진다
새해가 시작되고 공방의 첫날은 한산했다.
나라현(奈良県)에서 부터 케리어를 끌고 오신 아주머니 한 분과 내가 오전 시간 수강생 전부였다.
아주머니는 연말연시 동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풀어놓으셨다.
강사님은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계속 반응해 주고 공방 안은 오후의 라디오 생방송 듣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난 라방 청취자였다.
가끔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하기도 했다.
"신년 기원하러 신사(神社)에 갔어.
신당 헌금함이 안 보이는 거야? 아, 글쎄, 그게..
헌금함까지 건드리는 나쁜 놈들이 생겨 모바일 헌금으로 전환했다고.
신당 옆에 표지판이 있네요? 세상에...
신당 앞에 표지판에 올린 QR코드로 했잖소."
"저런, 그런 일이 다 있군요? 물가는 오르고 엔화는 떨어지고... 그렇다고 헌금함을 노리다니!"
"그러게 말이유. 하늘에 천벌 받지. 먹고살기 힘드니 별일 다 생겨.."
다음은 정치계 소식.
이야기 보따리가 계속 풀어 나온다.
아주머니는 손으로 빚어낸 냉장고용 마그네틱 장식품을 네 개 만들고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나는 전 시간에 끝내지 못한 접시들의 표면을 깎아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겁이 많아 잘못해서 표면에 구멍이 날까 조심조심. 강사님도 나의 소심증을 눈치채셨다.
"어렵죠... 그래도 전보다 많이 얇아졌어요. 가벼워졌고."
"겁이 나서 깎아내기 어려워요... 다음 시간에 더 연장시켜도 돼요?"
"그럼요. 본인이 감(感)을 느낄 때까지 연습해도 돼요. 여기 이 접시는 제법 가벼우니까 소성(素焼き) 해도 될 것 같아요. "
'소성(素焼き: 스야끼)'은 흙으로 만든 그릇이나 도자기를 자연 건조시킨 후, 약 800℃의 온도로 구워지는 초벌구이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흙은 단단해지고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변한다. 생흙보다 강도가 높아지고, 이후의 작업이 용이해지는데 재벌구이 즉 '본소성(本焼き: 혼야끼)' 전에 불순물을 제거하고 도자기의 수축률을 줄이고 유약이 잘 발리도록 돕는 단계이기도 하다.
800도 가마에서 초벌구이를 한 후 100도 가까이 온도를 조금씩 천천히 가마 안에서 식혀가며 기다린다.
이곳 공방은 전기 가마를 이용하는데 자택에 작은 전기 가마나 가스가마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강사님들 대부분은 미대출신이나 전문학교를 졸업하거나 도예가의 제자로 들어가 배웠던 케이스가 많다고 했다.
이 날 새로운 여자 강사분이 들어오셨다.
졸업 후 개인 사정으로 한동안 도예작업자의 일을 관두었다가 몸이 기억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공방을 둘러보며 모든 도예 작품을 하나씩 감상하면서 비전문가들의 작품이나 아이디어가 많이 자극이 되겠다며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보니 직장에서의 루틴이 생각났다.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은 이렇게 대충 하면 되겠지, 한 두 과정 넘어가도 되겠지...
익숙해진 일에는 잔꾀가 생겨 지름길로 가려는 게 사람 마음인 듯하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사용한 문구이다.
끊임없는 열정과 호기심을 유지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끔 대충 넘기려는 사람들을 볼 때, 혹은 나 자신이 그럴 때 이 말을 기억해 낸다.
'Stay hungry',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라는 의미이다. 배부른 상태에서 사람은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Stay foolish',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틀을 깨는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다. 현 상태 혹은 과거의 성공에 도취된 자만심은 새로운 자극과 정보에 교만해질 가능성이 크다.
도예과정에서도 흙을 처음 반죽 과정부터 마지막 재소성 작업까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방식으로 하다가는 기대치 이하의 결과를 얻게 된다.
손으로 하는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 꾸준히 노력한 결과는 언젠가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공방을 나오면서 상상을 해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법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 연습해 직장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즈음엔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
많이 경험하고 실패하고 연습한다.
모든 과정은 교만한 마음 갖지 말고.
Stay hungry, stay foo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