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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Dec 21. 2024

내 남편은 광수?

부부대화가 답답한 커플들의 자가 점검'혹시 광수인가?'

‘나는 솔로다’라는 남녀 매칭 프로그램이 있다. 남자 6명, 여자 6명 총 12명의 출연자들이 5박 6일을 보내면서 자신과 맞는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출연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부여된 이름으로 참여한다. 즉 매 기수마다 영호가 있고 광수가 있다. 설정된 이름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특징이 존재한다.


내가 가장 갑갑하게 느끼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광수’다. 대체로 소통이 막힌 직진남 혹은 불도저다. 착하고 순수한 너드 스타일이 많다. 융통성이 없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몰라 헛삽질을 자주 하는 속 터지는 스타일.  광수다. 너드 광수는 학벌 좋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고연봉의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좋은 조건이다. 소통 관점에서는? 낙제다.


안타깝다. 광수의 진실한 마음은 남녀 관계에서 매력으로 어필이 쉽지 않다. 광수는 공부를 하거나 일하는 방법으로 한 사람에게 직진한다. 광수가 잘하는 것은 직진이다. 샛길을 모르는 광수의 직진, 대부분의 여성 출연자가 부담으로 느낀다. 이상한 점은 여기다. 여성은 대체적으로 남자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만 바라보는 이성에게 신뢰가 생기고 매력을 느낀다. 왜 광수의 직진은 매력이 아닌 부담일까?  


광수에게 부족한 것은 ‘상대의 마음 읽기’다. 상대의 생각이나 상황을 읽고 대처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거의 백지상태와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자신의 머리에서 생각해 내고 준비한 자신만의 계획을 밀고 나간다. 호랑이 마음을 사려면 고기를 줘야 하고, 소의 마음을 사려면 풀을 줘야 하는데 상대 고려 없이 준비한 음식을 열심히 제공한다.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안타깝지만 우는 모습마저 짜증 난다. 아주 이기적인 노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관계는 소통으로 연결된다. 소통은 혼자만의 계획 시나리오 실천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살피며 공감과 주장의 강약을 조절하는 감각활동이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광수가 많다. 광수에게 조언이나 충고가 효과가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든다. 소통은 공부로 터득되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은 감각이 필요하다. 감각은 체험을 통해 몸에 새겨진 무의식적인 센스다.


광수 캐릭터에 유난히 관심이 쏠렸던 이유를 알게 됐다. ‘광수’와 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 거다. 30년 가까이 다른 언어로 살고 있다. 원하는 것을 말해도 이해를 못 한다. 일부러 이해했어도 안 한 척 자존심 부리는거라 생각했다. 광수들을 보면서 알게 됐다. 이해를 못 한 거다. 광수는 이해를 못 한다. 광수와 대화는 두 마디 주고받기 전에 멈춘다. 한숨으로 감정은 배출하고 생각은 누른다. 


대화의 티키타카는 불가능에 가깝다. 착하고 순수하고 나쁜 짓 안 하는 사회적 기준의 좋은 사람 광수. 자신의 생각을 정답으로 알고 밀어붙이는 프로젝트형 인간이 광수다.

광수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힘들다. 소통의 비중을 줄이고 다른 장점에 무게 비중을 실어야 불협화음을 완화할 수 있다.


광수 사용 설명서가 있다면 어떨까? 이 세상 모든 광수와 광수를 짝으로 둔 여성들이 소통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말이다. 착하지만 불통인 광수와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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