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지만 투명하지 않은.

나의 30대 어느날. 아직 투명해가는 중.

반쯤타다 물에 젖어버린 연탄처럼

곰팡내 가득한 지하실의 습습한 시멘트벽처럼

기분나쁘지만 어딘지 슬프고 향수를 자아내던

어제의 하늘과 달리

오늘은 참 맑다.


늘 그랬다. 난.

어제와 같은 날을 좋아했다.

어딘지 슬프고 향수어린. 그런 습습함은 내 본질적 외로움과 많이 닮아있기에.


나를 포장하고있는 보드랍고 얇은, 이 연분홍 꽃잎같은 막을 걷어내고

불안한 정서 그 자체.

무질서와 과장된 자유를 갈망하고

늘 낯선곳으로의 비약을 꿈꾸는.

흔히 정신머리가 엄한데 가있다고 할때의 그 정신머리 상태인

본래의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있다.


가리고살지만

숨기고싶지않은 소중한. 상처투성이의 나.

그런 나를 끌어안아주는 시간이 있다.

살아가는 내가

생각하는 나를

품에안고 쓸어준다.

아픈 눈물이 내 피부를 타고 스며들어 본래의 나를 위로해준다.

그리고.그게 끝이다.


아무것도 변하지않고

다시 살아가는 나로 돌아온다.

한계지워진 자유.

그 rule을 현명히 지켜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려진 보람.

저런 보람한번 나도 가져보자며 다시 살아간다.

그렇다.

아픈눈물도. 반쯤타다 젖은 연탄같은 날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모두 아무것도 변하게 할 수 없다.

단지.

내안의 불쑥대는.위험하지만.순수한 상태의 원시적인 자아와

다듬어진 상태의 진화된 자아가 서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 뿐이다.


인간은 하나의 우주이다.

인간안에는 양립할 수 없는 수많은 행성들이 존재한다.

단순하게 살자는 슬로건은

바로 이들간에 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호흡하는 생물에 불과하다.


인간이기에 내재된 혼란을 가지며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내안의 양면성을 다스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래서

세상 어떤 생물체보다 고되고 힘든것이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날아다니는 무엇.

아주높거나 깊은 어딘가에. 철저히 외롭고 독립적인.

그런것이고 싶다.


늘 한계지워진 자유와 타협해야하고

내재된 혼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고행'이라는 정의가 정말 진리인 삶.

번뇌하고 분노하고 이해의 한계를 슬퍼하며.

몰입하고 꿈을 이루고 그러다 또 번뇌하고 또 꿈꾸고.


우습다.

슬프다.

시지프스같다.


그래도 시지프스보단 낫다.

인간은 죽을 수 있으니깐.

얼마전 티비에서 망각할 수 있다는건 행복이라고 하던데

그럼 죽는다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다.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일 뿐.


번뇌하고 꿈꾸고 번뇌하고 한계를 괴로워하고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감고 싶다.


그 전까지는

호흡하는 생물이 아닌.

늘 깨어있는 존재이고 싶다.

많이 부딪히고 괴롭겠지만 방법이 없다.

단지 두려운 건. 내 의지가 유약해서 모든걸 놓아버린 채 의욕없이 살까봐. 정신이 게을러질까봐.

그것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난.

좋은것들로는 해결이 나지 않는 사람이다.


하늘 음울한 날 한없이 고통스러워하며 울어보는것이

라일락 향기로운 투명한 봄날의 산책보다 훨씬 효과가 있고.

1년 365일 독서실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면서도 뭔가 해내는것이

적당히 살림하고 간간히 취미생활하며 생의여유를 한껏 느끼는것보다 사는것같다.


뭔가 자꾸 나를 넘어서고 싶은 것이다.

뭔가.

내가 막을 수 없는 뭔가.

내안에서 자꾸 갈증을 일으킨다.

갈증에 비해

내 의지는 유약하기 그지없다.

그게 늘 슬프다.


난 부와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이 한계를 이겨내는게 목표이다.


- 2007년 어느 날 -




15년전에 쓴 ' 나라는 사람은..' 이라는 일기를 오랜만에 읽어본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라는 사람은 이렇다.

인간이 가진 그 각자의 영혼의 색은 나이듦과는 별개인 듯 하다.

밝지만 투명하진 않은,

적당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나름 거침없이 나아간다.


언젠가 어둡더라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영혼으로..호흡하는 날까지.


누군가가 내게 행복을 주기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자.

남들 눈에는 미련하게 돌아서 가는 듯 보여도 내 눈에 나의 길이면 웃으며 가는 거다.


스스로 행복하자.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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