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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을수록 더 요란해야지요”

이함 캠퍼스

by hyogeun

“비어 있을수록 더 요란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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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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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속담이다. 실속 없는 사람이 겉으로 떠들어 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는 체한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보통 부정적인 말로 쓰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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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축에서 이 속담은 그렇지 않다. 물론 속담을 직역했을 때 이야기다. 빌 ‘공’에 사이 ‘간’을 쓰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빈 곳을 뜻하기에, 비어있으면 비어있을수록 사용할 자리가 많아진다. 그래서 빈 수레가 요란한 건 건축 공간에서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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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마당은 비어있다. 나무와 풀로 채우지 않고 돌 아니면 마사토를 깔아, 마당을 미색 도화지로 만들었다. 덕분에 마당은 연례 행사장으로 사용되거나 김장이나 고추를 말리는 작업장으로, 때론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어, 비어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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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음으로 공간의 기능이 다양하게 바뀌는 건 마당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방에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상을 피면 주방이다. 책상을 피면 독서실이고, 마당을 향해 창을 열면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과 하늘이 풍경화가 되어 방은 미술관이 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비어 있음은 언제라도 다양한 공간으로 사용될 잠재력을 가진 긍정적인 공간이었고, 때문에 공간이 비어있을수록 요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간이란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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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오면서 공간은 목적에 따라 세분화 되어 회의실은 회의실, 독서실은 독서실, 침실은 침실로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른 기능을 위해서는 다른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그 말인즉슨 목적이 사라지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도 사라져, 그곳은 금세 지루하고 죽은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가구와 각종 설비가 공간을 꽉꽉 채우고 있는 것도 한몫하여 용도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공간은 점점 조용해지고 점잖아져, 되려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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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자의 뜻을 가진 ‘이함’은 문화를 수용하고 담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비어있는 그릇이 다양한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이곳 또한 작가의 작품을 담아 대중에게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려 한다. 그래서 ‘이함 캠퍼스’는 카페를 제외한 모든 실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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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통에 밥을 퍼서 먹을 수 없는 것과 동일하게 대부분의 미술관은 크기가 크고 높이도 높아, 전시장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반면,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높이, 다른 공간감을 가진 6개의 전시실과 그사이에 생긴 공간인 선큰 가든, 건물 앞에 마련된 잔디 광장은 우리네 전통 한옥의 마당과 방처럼 다변성을 지닌다. 대지 위에 낮게 깔린 건물 덕에 천창을 활용하여 건물 깊숙한 곳까지 빛을 들일 수도 있어서, 깊은 곳 모두 한정된 공간이 아닌 다양한 공간으로 쓰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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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함 캠퍼스는 근래 개관했지만, 사실 1999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필자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이 건물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서라도 우리 곁에 등장한 건 다행이다. 거기에 공간을 주제로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측은함과 설렘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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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비어있어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기에, 날마다 다른 공간감으로 20년보다 긴 시간 동안 우리를 반길 것이다. 그렇기에 빈 공간일 수록 요란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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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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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370-18

매일 10:30 - 19: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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