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책 박물관
“누군가의 책방을 방문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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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가 주연으로 나오는 ‘비긴 어게인’은 명곡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로맨스 영화다. 거기서 두 주인공은 차 안에 걸려있는 ‘분배기’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폰에 들어있는 음악을 궁금해하는 남주인공인 ‘마크’에게 여주인공인 ‘키이라’는 공개하기 창피한 음악이 많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마크는 상대방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여주인공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그렇게 둘은 뉴욕의 거리를 활보하며 서로의 노래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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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를 본다는 건, 마크가 말한 것과 같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다르게 말하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어떤 장르를 좋아하고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는지, 목록에 최신곡이 많은지 아니면 오래도록 사랑받는 클래식 곡이 많은지. 이렇게 사소한 부분을 파악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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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누군가의 책방을 방문하거나 휴대폰 속에 저장된 책의 목록을 확인하는 것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어쩌면 더 깊게 파고드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서 지식이 쌓이고 그렇게 쌓인 지식이 자신을 확립해 나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읽고 수집한 책의 목록을 본다는 건, 상대방이 살아온 삶의 일부는 들춰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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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수히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서재나 기업의 소장실, 심지어 학교 도서관이 대부분 고요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가지는 건, 그들이 그간 쌓아온 열정과 노력의 산물이 공간에 그대로 표출돼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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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책 박물관’은 열화당 발행인이 오십여 년 동안 모아 온 책을 담고 있다. 여기에 열화당 편집실이 오랫동안 소장해온 예술 서적부터 동서양 고서, 직접 선별해서 고른 세계 각국의 책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이곳을 탐험하면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 출판사로서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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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담백하다. 군더더기 없는 외관에 산발적으로 뚫린 창은 내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간결함 속에 조금의 포인트를 주는 순환 브릿지와 여러 구역으로 나뉜 전시 공간은 지루하지 않게 곳곳을 둘러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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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게 나누어진 공간은 그곳에 꽂힌 서적이 공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제1전시실은 198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출간된 책을, 제2전시실에서는 보다 오래된 고서를 전시한다. 음악 공간은 2층에 작게 마련되어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순환 브릿지에서는 여러 사람이 기증한 도서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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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분위기와 알맞은 조도,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으로 이곳은 박물관, 도서관 보다 누군가의 서재에 방문한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열화당이라는 사람은 한국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임을 이곳에 꽂혀있는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짐작이 그간 열화당이 출간한 책을 통해 증명되고 있으니, 누군가의 책방을 방문한다는 건 휴대폰 속 플레이리스트를 보는 것과 같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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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순간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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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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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광인사길 25 열화당
평일 10:00 - 17:00 (휴게시간 12:00 - 13:00)
주말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