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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Apr 30. 2024

“유속을 늦추는”

 무비랜드

“유속을 늦추는” - 무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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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변한다. 그러니 그것을 감싸는 건물. 건물로 채워진 도시가 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변화가 잔잔한 물살이 아닌 급류라면 어떨까. 흐름은 물의 썩음을 방지하지만, 빠름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존에 뿌리내린 정체성까지 뽑아버린다.


성수동의 매력은 공업 지역의 재탄생에 있다. 공장과 카페의 조합은 신선했다. 현재와 과거의 오묘한 공존과 정겨움 속 발견하는 새로움. 이질적인 두 특성이 조합되어 성수동의 고유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공장 사이사이를 채우던 소규모 상권은 타지역으로 내몰리고, 공장은 브랜드의 순례지가 되면서 세트장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거대한 건물이 동네 깊숙이 침투하는 상황. 성수동은 물살은 드셌고, 식물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식물 없는 빈 땅은 산사태가 일어나기 쉽기에, 성수동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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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영화관은 멀티플렉스로 다수의 상영관을 가진다. 못해도 5개는 기본이다. 상영관의 부피와 개수만큼 건물이 커진다. 상영관 하나가 127명을 수용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2시간 반의 회전율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10까지 한 상영관에는 635명이, 5개면 3,175명을 수용한다. 당연히 모든 상영관이 매진되지 못할뿐더러 코로나 이후 방문율도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거대한 면적에 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은 상권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결국 한 건물에서 모든 일이 해결된다. 차를 타고 온 이들은 주차장에서 내려 영화를 보고 식사하며 쇼핑하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말하지만, 영화관은 사람들을 퍼트리지 않는다. 예술이 문화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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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길을 따라 형성된 상권 한 켜 뒤에 ’무비랜드‘가 있다. 놀라지 마시라, 이곳은 30석 정도의 상영관이 단 한 개뿐이다. 게다가 최신 영화를 상영하지도 않는다. 주인장이 특별히 엄선한 영화 혹은 특정 인물이 추천한 영화만 상영한다. 개봉 연도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다양하다. 가격은 다른 영화관에 비해 2천 원 정도 비싸지만, 영화관은 매주 매진이다.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건 이곳만의 정체성 때문.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증축하여 만들어낸 작은 영화관. 신선함 속 정겨운 과거의 영화. 어려서 보지 못했던 영화를 감상하고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 영화와 관련한 굿즈를 제작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무료한 대기 시간을 때울 수도 있다. 영화관 못지않은 식음료 판매는 기본이다. 공간은 작지만 경험은 풍성하다.


무엇보다 이곳이 멀티플렉스보다 사람들을 주변으로 침투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작기에 부족한 시설을 주변에서 채우기 때문. 카페, 음식점을 향해 관객은 발걸음을 옮긴다. 거기서 영화를 이야기하며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파리의 여느 카페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정겨운 이미지로 일반인은 물론, 이미 팬층은 두껍고 영화인들 사이에선 소문도 자자하다. 안정적으로 이 땅에 뿌리 내린 듯하다. 결국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거세진 물살은 개성이 확실한 소규모 공간의 산발적 분포가 유속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론에 충실한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는가? 너도나도 팝업스토어며 탕후루며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뭐든 시도해 보는 성수동, 한국 상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쇼윈도다. 카페 겸 전시장인 대림창고가 성수동의 변화를 예고했듯, 이곳도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씨앗이 문화의 시발점인 영화이기 때문.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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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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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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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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