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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May 06. 2024

“흔적을 지우는 조율자”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흔적을 지우는 조율자” -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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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국현미)에서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전시된다. 정영선은 1세대 조경가로서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아시아공원’, ‘선유도공원’, ‘경춘선숲길’의 굵직한 공공 프로젝트부터 호암미술관 ‘희원’, 아모레퍼시픽 본사 ’아모레 가든‘, ’사유원‘,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일대까지 다수의 민간 프로젝트도 진행해 온 바 있다. 7 전시장에서 진행되는 본전시는 총 5개의 주제로 작품은 분류하고 그 중 대표작을 선정해 작품과 관련한 드로잉, 도면, 모형을 순차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에 전시장 바로 앞 선큰 가든인 ‘전시마당’과 미술관의 뒷마당이자 종친부 건물의 앞마당인 ‘종친부마당’에서는 그녀의 실제 조경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식생과 이것의 배치방식을 통해 그녀의 철학을 생생히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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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조경 설계로 참여한 작품 중, 아모레 가든, 제주 오설록, 사유원, 설화수 플래그십스토어, 서울식물원과 같이 필자가 방문했던 공간의 경험을 돌이켜본다면, 작품의 공통적 특징은 작가성의 부재다. 그녀가 진행해 온 프로젝트는 창조적 행위의 결과물인 ‘작품’이지만, 건축가처럼 확연히 드러나는 개성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개성을 절제하고 땅의 정체성을 살리려는 그녀의 작업 방식은 건축을 존중하고 도시와 땅의 맥락을 적극 수용했기 때문인데, 그 태도는 한국의 전통 정원 조성 방식에 기인한다.


서양의 정원은 경계석을 두어 인공의 자연 섬을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분수를 둔다. 자연을 통제하고 거스를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어떨까. 동양은 일찍부터 도교의 영향을 받아 서양의 것과 다르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중국은 대자연의 축소판을 조성한 듯하고, 일본은 분재하듯 정교한 미를 뽐낸다. 그와 반대로 한국은 인위적 특성을 최대한 감추어 건물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바위처럼 보이도록 한다. 결국 건축과 조경 모두 인공적 행위이지만, 한국의 전통 조경은 건축이 파헤쳐놓은 부자연스러움의 흔적을 지우며 자연과의 조화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흔적을 지우는 조율자로 바라볼 수 있는 정영선의 작업 방식은 전시마당과 종친부 마당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전시마당에서 언덕을 만들고 공간의 벽면을 따라 조성한 식생은 공간의 배경이 된다. 양치식물로 구성하여 선큰 가든의 특징도 살렸다. 종친부 마당은 인왕산을 향해 열려있지만, 전통과 현대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완충 효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기단석을 두어 종친부 앞마당과 미술관의 뒷마당을 경계 짓고 전통적 느낌이 드는 관목을 심어 부지의 부족함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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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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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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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매일 10: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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