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기념하는가”

전쟁 기념관

by hyogeun

전쟁은 추하고 악하다. 국익을 위해 개개인의 죽음은 익명화되어 같은 피로 희석된다. 전쟁의 승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서울 용산의 전쟁 기념관은 대한민국의 항쟁과 전쟁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고 모으며 보존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전쟁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6.25 전쟁 관련 유물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기념관이다. 무엇을 기념한다는 말인가? 전쟁 자체를 기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된 이들을 기념하는 것이 목적일 테다. 그런데 건물은 마치 전쟁을 권위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미화하는 듯하다.


건물과 외부 공간이 좌우대칭을 이룬다. 두 개의 아치가 교차하며 진입 동선을 이루고 그 중심에 6.25 전쟁 조형물을 놓았다. 이 조형물에서 건물의 정문을 잇는 축은 남북의 축과 거의 평행하다. 그 축을 중심으로 평화의 광장, 조형물, 조경, 건물 내 전시실, 국군전사자명비가 좌우대칭으로 설계되어 있다. 좌우대칭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거대한 건물이 대칭일 경우에는 위압감을 준다. 건물과 국군전사자명비가 ‘ㄷ’자를 이루며 넓은 광장을 둘러싸고, 한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이 건물을 권위적으로 만든다.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전쟁 기념관 배치도. 조형물에서 건물까지의 축이 남북 축괴 거의 평행하다.
6.25 전쟁 조형물을 지나면 보이는 전쟁 기념관

내부는 어떨까. 정문을 통과해 얕은 경사로를 오르면 건물을 수직 관통하는 원통의 공간이 나온다. 정갈히 잘리고 붙여진 석재가 청동색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 돋보인다. 호국추모실의 입구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물이 넘쳐흐르는 반구형 조형물을 보게 된다. 천장에서 미세한 빛이 떨어져 물 위로 태극을 비춘다. 평화를 위해 희생된 이들을 기념하는 장소는 침묵이 필요하고, 호구추모실은 침묵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생각에 잠기며 공간을 돌아다니기도 잠시, 격납고를 형상화한 거대한 전시실에서 조종기는 천장을 활개하고 탱크가 지상을 잡아먹는다. 침묵은 전시실의 웅장한 장치 앞에서 감탄으로 바뀐다. 그 감탄이 기념의 자리를 밀어낸다. 전쟁을 장엄하게 포장하는 스케일 때문에 석재의 정교한 디테일도 희생자를 비추지 못한다.

왼쪽에서부터, 호국추모실 입구, 호국추모실과 복도, 격납고를 닮은 대형 전시실
결국 질문하게 된다. 이 기념관은 무얼 기념하는가? 희생, 승리 혹은 국가 권력인가?


이곳의 명칭이 박물관이라면 말이 달라졌을까. 그러면 권위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의 건물과 전시 방식이 국방력 과시를 위한 시설로 포장될 수 있었을까. 전쟁이 침략이든 방어든 간에 박물관은 기록하여 후대에 남겨주는 유산과도 같다. 전쟁을 기록하는 건 미화하거나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게 하고 평화를 지켜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전쟁의 장엄함이 아니라 그것의 참혹함을 전쟁기념관이 공간으로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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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이성관 건축가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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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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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09:30 - 18:00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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