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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l 25. 2022

<사비니 여인의 중재>에 나타난 신고전주의의 균열

자크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의 중재>, 루브르 박물관, 1799


원문 : Darcy Brimaldo Grigsby, Nudity à la grecque in 1799, The Art Bulletin, 1998.
 (1799년의 그리스풍 누드)


어떤 성에 속하든 어느 누구도 남녀 시민 누구에게나 특정한 방식으로 옷 입기를 강요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용의자로 간주하며 다룰 것이며, 또한 공공의 안녕을 방해한 자로 기소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성에 적절한 의복을 착용하거나 몸단장을 하는 데 자유롭다.
Le Moniteur universel, no. 39


1799년 다비드가 선보인 <사비니 여인의 중재>는 화가의 예술적 행보에 있어 큰 전환을 이룬 작품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이후 한동안 영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였던 다비드는 이 작품을 통해 프랑스 내에서 자신의 확고한 입지를 재확인했으며 이후 벨기에로 망명하기 전까지 크나큰 명성을 쌓게 된다. 또한 작품은 화가의 삶에서 큰 중요성을 가지는 만큼이나 여러 파격적인 실험과 변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역사화의 전통적인 전시 장소였던 살롱이 아닌 입장료를 받는 개인전 형식으로 공개했으며 작업 의도를 적은 팜플릿을 준비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함의를 온전히 전달하고자 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다비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형식적 측면에서 그는 스스로가 "그리스 풍"이라 부르는 고고학적 정확성과 고전주의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회화를 그리고자 했다.(실제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또한 소수의 인물들을 묘사했던 과거의 방식과 다르게 다수의 인물을 화면 속에 밀어넣어 거대한 캔버스 속 사건의 극적 효과를 더욱 강화하고자 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사비니 여인의 중재라는 당대에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일화를 채택해 혁명 이후 프랑스를 향한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오늘날의 연구에서 <사비니 여인의 중재>는 프랑스 예술계에서 다비드의 위상 회복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여겨진다. 또한 작품 해석에 관해서는 가운데에 위치한 헤르실리아를 통해 동시대 혼란스런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양쪽에 위치한 타티우스와 로물루스를 통해서는 동시대 인물에서 고전고대 인물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간 작가의 예술적 지향을 읽어낸다. 대부분의 동시대인 또한 작품을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했는데 그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러한 해석이 작품의 의미에 대한 정론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이른바 다비드 화파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사비니 여인의 중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르시 그릭스비(Darcy Brimaldo Grigsby)는 기존의 해석에서 중앙의 여인들과 양 끝의 두 인물을 각각 별개의 의미를 지닌 요소로 해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컨대, 학자들이 이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가운데의 여인들은 당대 정치 상황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양 끝의 인물은 작가의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특정 인물들에 집중한 해석이기에 인물들의 전체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아트블레틴에 기고한 논문 <1799년의 그리스풍 누드 Nudity à la grecque in 1799>는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혁명 시기 <사비니 여인의 중재>의 사회, 문화적 함의는 무엇인가? 관객들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이러한 의문 속에서 저자는 헤르실리아가 입은 "그리스풍 의상"이 동시대 관객들의 작품 독해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헤르실리아가 단지 고전고대의 인물이 아닌 당대의 여성의 신체, 의복에 대한 관례, 젠더 갈등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사비니 여인의 중재> 속 헤르실리아가 어째서 중재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 밝혀낸다.


저자가 제일 먼저 주목하는 것은 타티우스와 로물루스다. 누드화로 그려진 두 인물은 당대의 비평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 중심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두 인물은 동시대 인물 묘사에 주력했던 다비드의 예술적 행로가 고전주의로 복귀했음을 보여주는 발생한 시각적 증거로 독해된다. 하지만 당대의 비평가들에게 두 인물은 고전주의의 강화 뿐만 아니라 논란의 진앙지이기도 했다. 이것은 누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1799년의 시점에서 누드는 단일한 시각적 기호로 기능하고 있지 않았다. 신고전주의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18세기 말의 문화적 분위기와 다르게 이 시기 누드는 몇몇 비평가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외국의 관습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인식에서 더 나아가 누드는 지배 계급의 취약성과 프랑스 엘리트들의 허위, 가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었다.


이것은 전시회를 찾은 비평가들이 왜 작품에 대해 상반된 해석을 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신고전주의의 원칙에 의거하면 남성 누드는 이상적 미를 재현한 대표적 상징물로 독해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당대 프랑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독해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고전적 누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비평가들은 작품 속 누드, 특히 타티우스의 미묘한 신체 비율과 적나라한 신체 노출을 지적하며 이것이 프랑스 남성들의 나약한 신체를 대중적으로 공개하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이해했다. 나아가 이러한 신체를 가진 남성들이 통치하는 프랑스의 허약함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했다. 다른 한편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은 작품 속 인물들이 고전고대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으며 특히 타티우스와 로물루스의 대비를 통해서 이상적 미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고 파악했다. 나아가 이들은 유행을 타지 않는 누드의 속성이 급격한 정치, 사회 변동을 겪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 일정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파악했다.


양측의 해석에 있어 작품 중앙에 있는 여성의 존재는 결정적이었다. 헤르실리아는 작품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해석의 중요한 틀로 기능한다. 또한 이 인물의 존재로 인해 다비드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사회적 의도가 선명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중재의 역할을 맡은 헤르실리아는 각자의 진영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강조하는 일종의 지렛대처럼 기능함으로서 해석의 불안정성을 만든다. 문제는 헤르실리아가 전체 스토리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가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의 복장이었다.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들은 헤르실리아의 존재를 통해 작품을 고전 고대의 이상적 미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동시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부정적 은유로 읽었다. 이와 달리 작품을 옹호하는 인물들은 헤르실리아의 존재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속성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당대 프랑스 여성들의 행동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 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 헤르실리아는 평화의 미덕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닌 동시대 여성들의 가치관과 연결지어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런 해석은 1780-90대 여성의 의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혁명 이후 여성의 의상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과도한 장식과 화려함, 격식을 중시하던 혁명 이전 복장은 그것의 귀족적 함의로 인해 허위 의식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최소한의 장식을 추구하고 어깨와 팔을 드러내는 등 신체 굴곡을 강조하는 "그리스풍(à la grecque)" 의상이 프랑스 여성들이 입어야할 모범적인 의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다비드가 작품을 전시했을 시점에 헤르실리아의 의상은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의 의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먼 과거의 여인이 아닌 동시대의 여인으로 독해될 소지가 있었다. 더구나 모델을 섰던 인물들이 당대 파리의 살롱에서 지명도가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은 더더욱 부각되었다. 문제는 그리스풍 의상의 유행이 당대에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분명 고전고대의 문화를 따른다는 점에서 공화국이 권장하는 미를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고전고대의 의상은 다른 한편에서 신체의 굴곡을 드러낸다는 점으로 인해 음탕함, 유혹과 연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귀족적 규범으로부터의 여성 의류가 해방되자 그것은 상품 경제의 논리 하에 유행과 같이 소비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전고대 의상이 내포하고 있는 미덕들은 변하지 않는 가치가 아닌 대중의 기호에 따라 소비되는 무엇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풍 복장을 반대하는 논리에는 여러가지 과학적, 윤리적 증거가 동원되었다. 가령 몇몇 학자들은 그리스풍 복장이 지중해성 기후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프랑스, 특히 파리의 기후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그렇기에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지식인들은 그러한 복장이 프랑스 여성들의 도덕성을 훼손시킨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복장에 대한 기묘한 상대주의가 반대 논리를 지배했다. 요컨대 고전고대의 풍습은 분명 고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프랑스 여성의 의복에 적용될 때는 부정적인 무엇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일부 지식인들은 그리스풍 의상이 구체제와 연관된 무엇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혁명 이전 귀족들의 연회에서 고전고대 의상이 여성들의 관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 있었다. 그리스풍이라 일컬어지는 여성의 복장이 공화국의 이상적 미를 드러낸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나 혁명 시기 복장을 통해 집단의 정치, 사회적 의견을 전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면 고전고대 복장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공화국의 이상을 시각화한 정치적 의견 표명의 한 종류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대 남성 의상은 여성들과 달리 장식이 강조되고 신체를 더욱 많이 가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혁명의 가치보다는 왕정시대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졌다. 즉, 공화국에서 권장하는 이상적 가치 기준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기준을 실천하는 존재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비평가들이 여성의 복장을 왕정과 연결시킨 것은 공화국의 이상을 여성들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의상은 단순히 미풍양속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지배, 공화국의 문화적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당대의 긴장 관계 속에서 헤르실리아가 중재자가 아닌 파열을 일으키는 존재로 보였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다비드는 고전주의의 순수성을 강화하겠다는 목적 하에 헤르실리아에 그리스 풍의 복장을 입혔을 것이다. 물론 논문의 저자는 이 지점에서 작품 스케치의 변화 과정을 통해 다비드가 동시대 패션 잡지를 참고해 복장을 그렸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이는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식을 즐겨썼던 다비드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썼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다시 말해 작품을 둘러싼 논란조차 다비드의 설계 중 일부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계가 여성들의 남성 지배라는 일부 지식인들의 우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특히 작품에 대한 작가 본인의 설명에서 헤르실리아가 아닌 로물루스와 타티우스에 대한 해설에 집중했다는 점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작품을 수용하는 관객들에게 있어 발가벗는 모습으로 표현된 남성과 (동시대인으로 인식된)헤르실리아의 대비는 그 어떤 것보다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비니 여인의 중재>를 젠더 위계의 측면으로 읽을 수 있는 소지는 또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인물의 위치와 시선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로물루스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비교적 어색한 모습으로 그려진 타티우스와 다르게 로물루스는 반신과도 같은 그 지위로 인해 가장 이상적인 신체로 묘사되어야 했으며 이를 통해 타티우스와의 대비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다비드는 그런 로물루스의 신체를 방패로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든 사람들이 로물루스의 신체를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면 속 여성들, 그러니까 헤르실리아의 뒤에 있는 여성들이 고전적 미를 지닌 로물루스의 신체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장치가 문화적 측면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남성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읽혔을지는 분명하다. 더군다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남성 관객들은 그러한 시선의 특권을 빼앗긴채 어색하게 혹은 부정적 비평가들에 의하면 나약한 프랑스인 남성의 뒤틀린 신체를 대변하는 타티우스의 벌거벗은 신체를 보게된다.


이러한 시선의 특권은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장소적 특성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과거 다비드의 작품에서 여성들의 존재는 주로 실내 공간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 작품 중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브루투스의 아들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형리들>같은 작품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과거의 작품과 달리 야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들의 활동 공간이 가정으로 국한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당대의 가치관에 비교할 때 파격적이고 위협적인 무엇으로 독해될 소지가 있었다. 요컨대 화면 속 장소 자체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부 관객들에게는 여성의 남성 지배라는 공포를 강화시켜 주는 요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수동적인 역할만이 부여되었던 여성의 역할은 이제 헤르실리아와 뒤따르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여주듯 공론장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의상을 둘러싼 젠더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다비드의 작품이 시한폭탄과 같은 역할을 한 것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옹호했던 사람들은 헤르실리아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저자는 그림을 옹호했던 인물들조차 헤르실리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분명 그들에게 있어 헤르실리아는 고전적 미덕과 천박함을 매개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옹호자들은 다비드의 그림이 로물루스와 타티우스로 대표되는 절제되고 이상적인 미와 여인들로 대표되는 무분별한 감정의 분출이 헤르실리아의 중재로 인해 조정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분명 젠더적 위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비평가들과 동일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들에게 헤르실리아는 남성적인 위계 질서를 유지시켜준다는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중재자로서의 헤르실리아는 이제 이상적 아름다움과 혼란을 매개하는 연결고리로 해석된다. 이 지점에서 신고전주의가 가진 위계적 구조와 균열이 드러난다. 신고전주의는 빙켈만이 주장했듯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그것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가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사비니 여인의 중재>에서 나타난 두 명의 누드는 분명 고전고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다비드의 계획 하에서 이상적인 신체의 전형으로 제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동시대 여성을 상기시키는 헤르실리아와 함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은 누드가 아닌 나체로 남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작품이든 실제 현실이든 여성의 역할을 과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범위로 축소하고 다시 그들에게 수동적이고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여성에게 정숙함을 강조하며 의복을 제한하고 남성적 가치를 대변하는 특정한 사상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저자의 해석은 혁명 시기 등장했던 짧은 파열과 이에 따른 신고전주의 미학의 위기에 대해 다룬다.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듯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치 아래 혁명이 표방했던 사회 참여는 여성들에게는 아직까지 머나먼 이야기였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되었으며 이를 통해 신고전주의는 여성 관객들을 공론장으로부터 격리하고 남성적 이상이라는 미학적 목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자의 논문은 1799년이라는 아주 짧은 시기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아주 짧은 시기의 예외적 상황을 다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작품 속 헤르실리아의 사회적 함의를 풀어내는 저자의 논지 전개 과정에서 반세기 이후의 <올랭피아> 속 빅토린 뫼랑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는 서양 근대 미술의 도입부를 연 신고전주의 사조가 그것의 전성기라 여겨지는 시기에도 그 미학적 전제조건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가지고 있는 경직된 이미지와 다르게 얼마나 변화무쌍한(다비드의 회화적 여정 자체가 이를 대변한다) 사조였는지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글은 개론서에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이 실제로는 복잡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여기에 더해 미술사 연구에서 있어 중요한 연구 주제인 신체 정치와 젠더 문제를 설득력 있는 논증과 당대의 사료 해석을 통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적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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