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2023년도는 장례식을 여러 번 간 거 같다. 결혼식을 많이 갔었던 20, 30대를 지나 40대를 들어서니 이제 장례식장 가는 비중이 확실히 늘었다. 이게 중년의 나이라는 거구나.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면 이제 부모님의 부고소식을 더 접하게 되니 말이다.
오늘 장례식장에 가서 소천하신 분들의 나이, 자녀, 손주들 명단과 돌아가시는 평균 나이가 75세 정도인 것을 보았을 때 나도 별일 없으면 대략 35년 정도 시간이 남아 있겠구나. 오늘 소천하신 분은 오래전부터 알던 언니의 어머니신데, 위암이셨다가 수술하셔서 완치되고 1년 만에 재발해서 급격히 악화되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고 한다.
언니가 그때 하필 서울에 교육이 있어서 병원까지 도착시간이 3시간 걸렸고, 위중하시다는 소리에 어머니 귀에 이어폰을 끼우도록 하고, 전화로 마지막 말들을 전했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언니의 마음은 이미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가 있는데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가 않는 답답함. 물리적인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더 안타깝다.
전화 이어폰을 통해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전했다고 한다. 왜 그동안 그 말 한마디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언니는 울었다. 언니는 우는데 난 급히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이 귀담아듣고 있는 와중에 난 불안하게 내 잠바를 더듬어 핸드폰을 잡았다. 머릿속에 '아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아빠 사랑해 건강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단 말이다. 모든 불필요한 감정들은 저 멀리 달아난 지금 아빠한테 따뜻하게 말을 건네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조금 더 지나면 다시 불편한 거리감이 생길 거 같아. 정말이었다. 그 찰나의 용기는 금방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핸드폰을 급하게 찾던 손은 드디어 핸드폰을 잡았는데, 어랏, 그 와 동시에 내 눈은 내 아이를 찾고 있었다. "얘, 어디 갔어"
난 성인 ADHD가 맞는 거 같다. 어떻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 생각하다가 저 생각하다가... 왔다 갔다. 요즘 자주 하는 행동이다. 아이가 번뜩 생각나면서 핸드폰을 테이블에 살며시 내려놓고 다시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 짧은 시간에 말하고자 했던 어떤 문장은 마음 깊숙한 곳에 쑥 들어가 버렸다.
대신에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피어오른다. 이쪽이 더 애틋한 감정이 드는 것 같다. 이미 안 계신 분이라서 그런가.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애틋함을 만들었나 보다. 언니의 이야기는 3년 전에 엄마를 보냈던 내 마음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거 같다. 그래... 나도 그랬었지. 나는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하지 못하고 보냈었네.
단지 책임감으로 임종자리를 지켰고, 짧게 울고 아무렇지 않은 듯 보내드렸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큰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나에게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었고, 오래 나를 돌봐줘서 정이 많이 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화하면 소리부터 지르는 사람.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 돌아가시기 전에 너무 약해지셔서 그때서야 안쓰러웠던 사람.
그럼에도 문득 그리운 이유는 엄마랑 마당의 있는 평상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같이 수박을 훑어 먹었기 때문이고, 딱 한번 날 뒤에서 사랑스럽게 안아줬고, 아빠를 막아서며 나를 보호해 주기도 했고, 매 끼니는 거르지 않고 따뜻하게 차려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옆에 있어준 내 엄마. 그때는 공포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보고 싶다. 날 좀 먹던 증오의 아지랑이들이 다 타오르고 지금은 잦아들었나 보다. 그리워하는 감정은 너무 잔잔해서 눈치 못 채고 있었는데 엄마를 보냈던 그 순간의 내 행동들이 많이 후회가 되는 걸 보면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거 아닐까.
의식 없는 상태로 요양병원에 계셨어도 옆에 오래 있을 걸.. 엄마, 지금은 보고 싶어요. 내가 그때 좀 더 엄마를 끌어안을 줄 아는 심성이었다면 덜 후회했을까. 상처 많은 당신에게 사랑을 표현했더라면 당신은 더 행복하게 지내다 갈 수 있었을까. 엄마 오늘 유난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