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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이나 Dec 28. 2023

엄마의 빈자리

아빠는 그렇게 지쳐가고

엄마와 동생과 헤어지고 아빠와 둘이 지냈던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왔다. '엄마는? 엄마는 어디 있어?' 묻고 싶었지만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묻어두기로 한다. 아빠는 자매의 밥을 챙기기 위해 2교대 공장 일을 하면서 밥과 반찬을 만드셨다. 우리의 반찬은 아빠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고추장 돼지 불고기였고 항상 그것만 먹었다.


1학년쯤 되었던 나는 혼자 집안일을 하는 아빠가 불쌍했는지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번쩍번쩍 번개가 내리치는 궂은날 동생과 함께 손을 걷어붙이고 빨래를 했다. 조물조물..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발로 빨래를 열심히 밟아도 보고 손으로 빨래를 뒤집어서 또 밟기를 반복했다. 숨이 죽은 빨래를 다시 들어 내려놓고 또 밟으면 통통하게 공기를 안고 있는 옷에서 세제 거품과 함께 '푹푹' 소리가 난다. 난 그게 참 재미있었다. 상품 포장할 때 들어가는 뽁뽁이를 터트리는 기분이랄까. 꼬맹이 둘이서 정말 열심히였다.


아빠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왔고 우리가 홀라당 젖은 채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이미 빨래해서 건조 중인 옷들을 다시 빨고 있으니, 너무 황당해서 화낼 생각도 못하고 그저 실소를 터트렸다. 우리가 벌인 일을 뒤처리할 일을 생각하면 열받을 만한데 아빠는 그저 웃었다. "이놈들아.. ㅋㅋㅋㅋ"


한날은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가 갖고 싶어, 장롱에 있는 이불들을 모조리 꺼내 쌓아 올렸으니 자그마치 1M 정도를 쌓았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우리 집은 이불가게를 했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높이 쌓아 올릴 수 있었다. 동생과 나는 침대를 만들어 동네 꼬마들을 데리고 와 방방 뛰어놀았다. 집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빠가 퇴근 후 나와 동생이 한 행동을 보고 힘이 부치셨는지 드디어 화를 내셨다.


아빠는 내 구구단 외우는 것도 봐줘야 했고, 밤에 아이 둘이 집에서 잘 자고 있는지 보기 위해 야근을 하다 말고 담을 타 넘고 집에 방문하곤 했다. 어느 날은 바람이 엄청 많이 부는 날이었는데, 하필 아빠가 야근하는 날이라 동생과 둘이서 잠을 자야 했다. 언니인 내가 동생을 보살펴야 했지만 그저 둘 다 이불속에 쏙 들어가 발발 떨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창문 밖에 어떤 실루엣이 거칠게 나풀거렸기 때문이다.


그래, 넓적한 나뭇잎이 거센 바람에 사정없이 맞고 있는 모양새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와 동생 눈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무언가가 창문을 열기 위해 시도하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창문이 덜커덕덜커덕거리고 있었으니... 땀이 등뒤로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더운데 얼굴을 내밀면 들켜서 잡혀갈 것 같았다.


그때 구세주인 아빠가 나타났다. "아이고 왜 이리 이불을 둘러 쓰고 있노. 이 땀이 뭐꼬" 마음에 긴장이 풀렸다. 아빠는 장난기도 많고 잘 웃으셨다. 사람들과 호쾌하게 대화하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그 시절 흔히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동생과 내가 아빠를 타고 놀면서 괴롭혀도(?) 잘 놀아줬다. 발로 비행기도 태워줬고, 무등도 태워줬다. 일을 하지 않는 날이면 항상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내면서 넋두리를 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때는 아빠의 힘듦이 어린 나에게 와닿지 않았나 보다. 아빠는 상실감을 나눌 사람도 없이 집에서는 줄담배를 하면서 술을 친구 삼아 그렇게 혼자 마음을 달래면서 두 아이를 돌보았다.


그런 아빠를 돕기는커녕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고 말았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에서 부모님 없이 자매 두 명만 사는 가정이 있었는데 자매 중 둘째 언니가 하라는 대로 돈을 훔친 것이다. 훔치고 화난 아빠를 피해 도망간 곳이 고작 집 장롱 안이였다.


거기서 얼마나 긴 시간을 공포에 떨었는지 모른다. 만원을 훔쳐서 군것질로 다 써버리고 장롱 안에서 장장 반나절을 떨다가 아빠한테 들켜 죽듯이 맞았다. 아... 이게 죽는 거구나. 깨달아질 정도로 얻어맞았다. 그때가 아빠한테 최초로 맞은 날이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매어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때 아빠가 지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될 뿐이다. 상실감을 해결도 하지 못한 응어리진 마음으로 힘들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공장 일도 너무 힘든데다가 내가 나쁜 짓까지 하니 배신감을 느껴 분노했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한 번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그다음은 더 쉽다고 했나. 난 아빠 지갑에 한번 더 돈을 훔쳤고, 아빠는 한결 수월하게 나를 때렸다. 처음에는 괴로워하면서 때렸다면 이번에는 또 네가 그랬지? 또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느낌... 그렇게 두 차례 더 돈을 훔치고 얻어맞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앞집 언니가 경찰 아저씨들을 따라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보였다.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사이렌이 울리고, 내가 따르던 언니는 경찰아저씨들과 사라지고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그 언니가 사라짐과 동시에 나의 나쁜 손버릇이 사라졌다.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물이 들어버리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강한 성향의 사람을 동경하거나 혹은 두려워해서 따라 하는 약자. 총명하지도 지혜도 없었던 그저 따라쟁이 아이. 동시에 작은 상실감이 찾아왔었던 것 같다. 나의 보호자가 또 사라진 상실감. 그래도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인데... 그렇게 더 지냈다면 난 분명 그 언니를 맹목적으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따르고 싶었다. 물론 아빠가 책임감으로 챙겨주었지만 그 이상의 애정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도 한몫했다. 아빠한테 편안하게 말하는 게 어려웠다. 장난은 잘 치는데 인격적인 대화가 없는 관계랄까. 아... 그래서 내가 엄마 껌딱지구나. 엄마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살던 내게 아빠와의 관계는 어색했던 것이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고 챙겨줬으니 아빠와 엄마를 은연중에 비교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무단히도 노력했지만 나는 그저 길 잃은 불쌍한 어린양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먼저 잘못한 일이었지만 아빠의 분노를 직접 체험한 나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그 뒤 아빠와의 대화는 점점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오해를 낳았고 그것들이 크나큰 쓰나미가 되어 나를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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