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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짱 Aug 07. 2019

도서관에서 잤다고? 너 어디 아파?

대학 시절 도서관을 두고 나와 친구들은 '수면약을 쳐놓았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날의 강의들이 마친 뒤 도서관 맞은편 학생회관서 만나 2천 원쯤 하는 튀김우동이나 롤 따위로 배를 대충 채우고는 자판기나 매점에서 레쓰비 같은 캔커피를 뽑아 먹었고, 카페인성 음료를 섭취하고도 도서관에서 식곤증을 견디지 못하고 꾸벅대거나 엎어지는 서로를 자기혐오의 늪으로부터 구제해주기 위해 "커피 마셔서 두 시간 잘 거 한 시간 잔 거야." 등의 논리 없는 위로를 주고받곤 했다. 새벽부터 제일 먼저 정원이 다 찰 정도로 인기였던 노트북 열람실에서도, 왠지 모르게 더 학구적이어야 할 것 같던 대학원 열람실에서도, 또 정문에서 한껏 구석에 박힌 문과대 독서실에서도 우리는 꼭 한숨씩을 잤다. 시험기간에 부족한 열람석을 보충하기 위해 마련되는 단과대 강의실에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코를 곤다면 그게 민폐였을 뿐, 자신만의 것으로 무전 임차한 당분간의 의자와 책상에서 자는 사람을 이상히 보는 시선은 없었다. 단지 자다가 좌석 대여 연장 기간을 놓치면 그게 속쓰렸을 뿐. 통렬히 자성한다거나 스스로의 건강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노오력이 미진한 듯한 스스로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과시적으로 자조할 뿐이었다.

책상에 엎어져 자는 습관의 역사는 그리 짧은 것이 아니었다.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리던 학창시절부터 그러했으니. 고스트스테이션을 듣던 중학생으로서도, 모두의 살을 빼주고 모두를 예뻐지게 해주고 모두를 남친 생기게 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곧 대학 입시를 향해 달려가던 고등학생으로서도 짬짬이 잤다. 가장 많이 자는 시간은 점심 먹고 한 시간 수업 듣고 나서인 5교시 끝나고 쉬는시간. 이때의 교실을 떠올리자면 희뿌연 햇볕 아래 대부분이 책상에 엎어져 있는 풍경뿐. 고3 때는 휴대폰 알람을 5분쯤 후에 진동으로 울리도록 해놓고 그걸 귀에 베고 모로 잤다. 목이 좀 아팠지만 팔을 안 베도 되니 팔도 안 저리고 코도 안 눌리고 쪽잠을 칼같이 잘 수 있는 나름의 혁신이었다.(이는 폴더폰이었고, 요즘에는 부피감이 납작한 스마트폰이라 그 각이 안 나올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잤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닌 회사들은 졸음이나 낮잠에 관대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노동 시간을 예민히 계량할 수 없는 정신 노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10분 20분쯤 자도 돼, 라고 스스로 말해놓고 진짜로 자고 있는 직원들을 보던 사장님 속이 터졌건 안 터졌건 이제 나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회사에 다니면서도 잤다. 작취미성으로 인해서는 점심 시간을 반납하고, 만성 피로로 인해서는 2시나 3시 언저리쯤에 머리가 안 돌아가서 눈을 붙였다. 회사에서의 야근은 물론이요 출퇴근 기록부상으론 퇴근했어도 집에서 일을 더 했거나 주말을 헐어서 일을 한 덕에, 쪽잠을 부르는 피로는 언제에도 풀리지 못한 채 늘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다른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할 때 간혹 돌아오는 질문이라곤 그래도 돼, 였지 너 괜찮아, 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쪽잠이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합의한 시간에 도서관에 출석하는 스터디에 참석하는 중이다. 독일어를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한국인들끼리 맺은 모임. 스스로의 자율성을 의심하며 공부를 해야만 하는 시공간에 나 자신을 옭아매려는 시도였다. 독일어 능력 인증 시험 준비를 학원과 별도로 하겠다던 야심찬 출발과 별개로, 나는 다시 도서관에서의 익숙한 짓을 벌이게 되었다. 독일에서라면 뭐 다르랴, 조용히 책을 뒤적이다 보면 곤한 아침의 피로가 왈칵 몰려오는 것을.
그날도 나는 저녁 알바 가기 전 도서관에 들렀던 참이었다. 그날 같이 일하게 된 상냥한 독일인 친구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냐 따위의 스몰토크를 걸어오길래 보통 얼마 걸리는데 지금은 도서관에서 오는 길이야, 답했더니 와우 너 부지런하네- 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다운 겸양의 미덕과 함께 나를 부지런하다 생각할 수 없는 측근들을 떠올리자 멋쩍어져 근데 나 거기서 잤어, 개그 삼아 자백하노라니 당황한 그의 반응, 무슨 일 있었어? 괜찮아?
짧은 독일어로 원어민과 대화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응대에 대해서는 반응 불가 상태가 되곤 했는데, 이때가 딱 그랬다. 해서 나는 어물어물 좀 피곤해서 하고 넘기고 말 수밖에 없었을 뿐. 한국에서라면 응 근데 그냥 퍼자다 왔네 긁적 하면 으이구 라면서 키읔이나 날아오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적당한 대꾸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나는 원체 상냥한 이 친구가 개그를 다큐로 받는 진중한 스타일이기까지 한가 보다 하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어색했던 대화가 왈칵 생각난 것은 얼마 전 학원에 같이 다녔던 친구를 따로 만나기로 하면서였다. 나와 같은 계절에 여기서 일하는 애인을 따라 이 도시로 흘러든 친구는 함께 다니던 학원을 수료한 뒤 고향인 이탈리아의 부모님 댁으로 가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 참이었다. 우리가 작년 11월부터 일곱 달 동안을 매주 5일간 네 시간씩 함께 수업을 듣고 또 한 달에 한두 번씩 맥주 한잔쯤을 하는 사이였으니, 고향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연고 없던 이 도시에 돌아오고서 일상을 다시 쌓아올리는 데에 나를 떠올렸던 것이렸다.
웰컴 백이라는 나의 말에 답장으로서 처음 온 연락은, 내가 점심시간에 알바를 하는 때가 있다면 그 전에 만나서 티타임을 갖자는 것이었다. 이를 읽고 나는 처음에 잘못 봤나 싶었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가게가 친구의 집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에 나온 제안인 것인데, 11시 반부터인 점심 시간에 일하려면 친구와 11시까지밖에 시간을 못 쓰는 것이자니 도대체 몇 시에 만나자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학원에 다닐 때야 학원 수업이 9시부터였으니까 그 시간에 만나는 것이 영 뜬금없는 것은 아닌데 학원도 안 가는 요즘 굳이 왜..
생각해보면 언제 한번은 같이 수업을 듣던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선물을 고르자며 만나자던 시간이 9시 반인가 10신가 그래서 놀랐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을 제안하는 사람의 눈에 응당 게으름뱅이의 투정으로 보일 게 뻔한, 쉬는 날인데 너무 이르다 좀 더 늦게 만나자 등의 말을 하기가 좀 그래서 대신 한국은 상점들이 11시에 여는데 독일은 일찍 여는구나 이탈리아도 그러니, 정도로 바르게 답했었었더랬다. 다행히도 선물 대신에 축의금을 내기로 하면서 그 시간의 회합이 성사되진 않았었지만. 그치만 그날은 학원이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었으니 어제도 9시에 내일도 모레도 9시에 학원 갈 거라 그랬다 쳐도, 그 누구도 9시에 그 무엇도 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일찍 만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휴일에 만난다 쳐도 빨라야 열두 시잖아...
결국엔 이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다행히도 수화자는 남편이었다. 친구를 보고 싶은 것과 별개로 약속 시간이 너무 새벽과도 같았는데 실제로 만나기로 한 10시가 진짜 새벽은 아니고 기실 누군가는 일과를 시작하고도 한참인 때라 투정할 수가 없으니, 같은 시간체계를 이고 살았던 동국적자에게라도 투정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무슨 효력이 있었겠느냐마는.
만나기로 한 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씻고 차려 입고 시내까지 나가 친구와 카페에 첫 손님으로 가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알바를 가지 않는 날이었기에 한적한 라인강변과 시내를 산책하며 결국 3시간을 꽉 채웠다. 그러고는 점심 맛있게 먹고 곧 또 보자며 포옹을 하고 돌아서는데 기어이 피곤이 몰려오고야 말았다. 그거 좀 일찍 일어났다고. 턱 빠져라 하품을 하며 아아 한숨 자고 싶은데 점심 먹고 도서관 가자면 낮잠 잘 시간이 없네, 가서 또 졸려나... 생각하다 보니, 도서관서 잤다는 말에 걱정하던 동료의 당황한 안색이 떠오른 것이다.
이 날만 따지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으니 피곤할 법이야 당연히 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왜, 도대체 무슨 일로, 한국인들은 주말에 아침 10시에 만나지 않는 것일까. 주말에 가장 이른 시간 사회생활이라 한다면 어디 여행을 갈 것이 아니고서야 결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과연 욕을 얼마나 먹을지 고민하는 아침 11시 결혼식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휴일 아침은, 또는 그 어떤 본업에 나서지 않는 날들의 아침은 모두에게 주중의 피로를 늦잠으로든 무엇으로든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해야 하는 어떤 사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에건 업무일에건 휴일 아침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든 날들에 누구든 자기 본분을 다하려고 기력의 바닥까지 끌어모아 한껏 애쓴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평일 5일간을 한국에서 밥 벌어먹는 직장인으로서 얼마나 꾸역꾸역 고되게 지내왔던가 하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나인 투 씩스 노동을 하고, 회사에 따라 더 일찍부터도 더 늦게까지도 회사에 시간과 에너지를 헌납하고, 그 뒤 저녁 시간을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혹은 회식으로, 또 혹은 운동이나 자기계발로 채워넣는다. 내 경우에는 전후 이틀에 저녁 시간 약속이 있어서 가운데 하루는 쉬어야 한다던 어떤 친구의 말이 너무 괴이쩍었을 정도로, 친구를 만나는 일로 저녁시간을 한껏 채워넣는 편이었다.
통념상 금요일은 개중에 가장 공격적으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었으니 그 누가 토요일 아침 10시에 어떠한 사회생활을 도모하려 하겠는가. 사람에 따라 금요일을 쉬는 날 전날로, 토요일을 쉬는 날로 치환해도 된다. 한국인에게 불태워야 할 금요일 밤은 자고로 술로든 드라마 정주행으로든 또 어떤 무엇으로든 다음날 컨디션을 신경쓰지 않고 자기 파괴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하는 시간이지 않은가.
이렇듯 일과 시간을 쥐어짜 업무나 공부를 하고 또 휴식 시간을 쥐어짜 내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돌보는 한국인들. 그런 우리들에게는 쉬는 날 아침 시간이 온전한 휴식의 시간이 되고(자녀를 양육하시는 부모님들 죄송합니다..) 또 책상 위가 엎어져 쪽잠을 청할 장소가 되는 것이다.

학원에서 직장에서의 피로가 주제였던 날, 교재 속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남자 사진을 보고 다들 아픈 사람이라 입모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학생들은 자는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선생님은 독일에서는 엎드려서 자는 게 굉장히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면서 처음에 한국 학생들이 쉬는시간에 엎어져 자는 걸 보고 아픈 줄 알고 깜짝 놀랐었다, 이제는 한국인들이 그러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나 말고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하던 단 하나의 다른 학우는 일본인이었고, 그 일본은 내가 뛰쳐나온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경제적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야근을 주된 테마로 삼을 때면 일본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희도 그러니, 하는 소리가 되돌아오던 곳이었다. 또 알리바바에서 일하다 왔다던 중국인 친구는 자신을 독일로 오게 만든 '6.9.9' 근무 문화를 소개하며 주 6일 9시부터 9시까지 일하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이 사회들이 20세기 저마다의 변곡점에서 희구하던 근대화랄까 자본주의로서의 현대화랄까 하던 것들이 모두 서양에서 이식된 것임을 생각하면, 숫자와 외양을 어거지로 따라 맞추기 위해 성숙할 시간을 갖지 못한 문화와 의식을 질질 끌며 절름대온 뱁새들의 가랑이가 분초를 쪼개 낮잠을 자게 만들고 근무일의 피로를 분통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쉬는 날에야 구뷔구뷔 펴내게 하는 것 아닐까나.

사실 이건 내가 금요일이면 꼭 술을 정수리 꼭대기까지 '처'마시고 자야만 만족스러운 술주정뱅이였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20.000. (독일 애들 소수점 대신 콤마 찍고 단위 구분하는 콤마 대신 온점 찍음)



다니는 도서관이 영어 도서관이라 가끔씩 이렇게 눈을 돌릴 수 있다. 한국 호크니전 대신 암스테르담 반고흐 박물관에서의 고흐+호크니 특별전 관람한 며칠 뒤의 미련.
그냥 원 오브 도서관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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