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라벨
흰색 티셔츠에 검은 물이 들었다. 얼룩 부위가 여러 곳이다. 청바지에서 물이 빠진 것 같다. 청바지가 이염 위험이 있으니 별도로 세탁하라고 했건만.
얼룩 부분을 비누로 문지르고 비비고 헹구고 짜고 다시 한번 비누칠하고 비빈다. 차츰 손아귀 힘이 풀린다. 얼마간 비눗물에 담가두기로 한다. 섬유의 얼룩을 빼는 건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세탁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탁소와 세제업체들이 먹고 사는거겠지.
대부분의 옷에는 케어라벨이 달려있다. 제조국, 제조년월, 섬유의 성분과 세탁 시 주의사항 등 꽤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이 표시들을 들여다보면 옷이 말을 거는 것 같다.
“내 이름은 SZ-J004야. 중국에서 태어났고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 출신이야. 내 모습은 겉은 나일론, 속은 폴리에스터야. 나는 찬물로 세탁하는 것을 좋아하고 표백제랑은 완전 안 맞아. 드라이클리닝은 내 몸 상태를 망가뜨리니까 절대 금지야! ”
케어라벨의 기호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다리미나 태양 픽토그램 위에 X 표시 되어있는 것을 빼면 대개 의미를 알 수 없다. 빨래가 간단한 가사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야에 나무 빨래판 걸쳐놓고 사각비누로 치대고 문지르던 때와는 세탁서비스나 방법의 차원이 다르다.
열 다섯 살 일 때 언니의 단칸 신혼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언니는 동네 세탁소에서 옷을 받아다 수선하는 부업을 했다. 마당에서 빨래 하던 언니가 나를 불렀다. 언니는 빨래판에 왜 고랑이 파여 있는지 아냐고 물었다. 나도 빨래판을 사용하긴 했지만, 고랑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언니는 팔래판 고랑 사이사이에 비눗물이 고이면 비누칠하지 않아도 때를 잘 빼준다고 했다. 그럴듯했다. 언니는 또 빨래판의 곡선 고랑이 몸쪽으로 와야 비눗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내 앞에 하얀 양말을 내밀었다. 새것 같지 않냐면서 뿌듯하게 빨랫줄에 널었다. 그깟 양말 몇 켤레 빨고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빨래를 마친 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내 도시락 반찬을 만들었다. 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
서울 옥수동 언니 집에서 인천 창영동 학교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예상대로 지각을 했다. 쉬는 시간에 들어가려고 수업 종소리를 기다리면서 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다. 나만을 위해 언니가 만들어준 처음이자 마지막 밥! 새하얗게 양말을 빨 때처럼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했을 게 분명한데 자세한 기억이 없다. 가난한 집도 싫고 복장과 두발을 단속하는 학교도 싫고 희망이라고는 없는 불만투성이 우울한 사춘기였다.
굽이굽이 삶의 언덕을 넘으며 얼룩들을 지워왔다.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식물들을 아낄 줄 알게 되었고 생명 없는 존재들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다. 감사할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정하게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언니가 그립다. 케어라벨의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언니가 알려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