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우정

열등감: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는 동력

by 이든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과 같이 장사를 하다 아버지가 소개해 준 남자를 만나 결혼한 친구가 있다. 결혼 후에는 컴퓨터디자인을 배워 인쇄업체를 차렸다. 그 친구를 삼십 초반에 만났다. 우리는 NGO단체 회원이었고 현수막이나 웹포스터, 자료집을 제작할 때 그 친구가 맡아서 했다. 디자인 감각이 좋고 사업수완이 있어서 거래처가 꽤 있었다. 가끔 통 크게 후원도 하고 여럿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언제나 그 친구가 계산했다. 돈을 벌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는 호방한 친구였다.

나는 수출산업공단 노동자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랐다. 매일 야근을 하고 휴일에 특근을 해도 먹고살기 빠듯했다. 월급을 받아 여기저기 외상값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공단 노동자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써낼 때 가정형편 수준을 체크해야 했다. 중산층과 빈곤층을 왔다 갔다 하면서 중산층에 체크했다. 세끼 밥은 먹으니 빈곤층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친구와 나는 동갑이었다. 그래서 더 비교 대상이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편하지 않았다. 그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정규 교육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가족들이나 대학시절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듣기만 했다. 한 집에 살았을 뿐 남남 같았던 가족이나 검정고시 학력은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살아온 형편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열등감은 상대와 자신을 비교해서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나는 부모의 보호 속에서 편안하게 자라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이 부러웠다. 이 부러움 속에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위치 시키고 열등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책을 읽게 되었다. 아들러는 어린 시절 병약했다. 신체적 열등감이 있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열등감을 성장의 동력으로 사용했다.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감에서 충격을 받았다. 열등감을 ‘못남’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는 동력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기대감이 생겼다. 유명한 문학인들에 대한 동경심 하나로 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가족 간에 존경과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했다.

꿈을 품고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열등감은 성취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꿈꾸던 스위트홈이 이상적 이미지일 뿐 현실의 가족은 다투고 갈등하는 애증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자주 밥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을 만들었다. 국문학과는 개론 수업들이 너무 어려워서 다른 과로 전과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교육프로그램 개발 적성을 찾았고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 친구와의 관계가 20년이 되었다. 서로 만나지 못한 기간도 있었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은 듣고 있었다.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내 열등감 때문에 선뜻 친해지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과감하고 저돌적인 그 친구 성격에 기가 눌려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새록새록 그 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언제나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맏이 같은 모습이다. 우리 둘의 성격 차이가 극명해서 절친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의 사업이 잘 풀리고 그의 가족들이 오래오래 다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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