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기도, ‘무(無)’적이 되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두려우면 상대방을 적이라고 생각해.

by 이든

어떤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자 친구가 인생 팔고를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보는 것도 고통이고 원수 같은 사람을 매일 봐야 하는 것도 고통이라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였다.

또 다른 친구는 고집불통이고 가부장적이고 업무능력도 없는 상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감력 떨어지는 친구가 또 입을 열었다.

“그 상사는 끄떡없을 걸. 왜 그런지 알아? 네가 그를 쫓아내고 싶은 만큼, 그 사람의 행복, 건재함을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웃음이 나왔다. 적이 사라져 주기를 기도할 때, 한편에선 적이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기도가 올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신입이었다. 신입인 나는 고참인 그보다 직급이 높았다. 그래도 그는 가끔 나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는 직원들을 편 가르기 하고 자기편을 열심히 지켰다. 인사고과나 업무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업무 분장 회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자리 잡혀서 프로그램을 굴리기만 하면 되는 프로젝트를 맡겠다고 했다. 자기 사람들과 별 노력 없이 일하겠다는 속내가 역겨웠다.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나는 업무가 고정되지 않게 순환하자고 했다. 편안함을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상기돼서 공격적인 말들이 오고 갔다. 그가 내 눈앞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술이든 학문이든 그 습성이 몸에 익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삼 년이라고 생각한다. 삼 년은 한 단계를 완성하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삼 년 내내 그를 진심으로 미워했다. 미움은 큰 에너지원이 되었다. 선량함에 대한 갈등 없이 온 마음을 다해 미워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에 대한 마음이 변하고 있다. 원인은 모르겠다. 그저 미움의 시간이 다 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속에 미움이 들끓을 때는 몰랐는데, 한풀 광기가 꺾이고 보니 그 사람이 안녕하기를 기도하는 그의 가족들이 보인다. 벼르던 송곳이 무뎌지는 것 같다.

『모두의 지구 안내서』 라는 책을 읽다가 내 모습을 보는 듯한 글을 발견했다.

‘무(無)’적이 된다 -no Enemy


‘무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머릿속에 적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해.

자신이 강해져서 모든 적을 물리치는 것과는 달라.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두려우면 상대방을 적이라고 생각해.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싫어하는 벌레나 동물, 잡초라는 이름의 식물까지 적으로 보고 때로는 죽이려고 하지.

그럴 때는 일단 멈춰 서서 상대방의 마음에 다가가 봐.

적은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해.

따라서 ‘어떤 생명이든 죽을힘을 다해 살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어느 순간 적이 저절로 사라져서 배려와 평화의 세계가 펼쳐질 거야.

‘무(無)’적의 세계를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삼 년 동안의 미움에는 그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있었다. 적을 없애달라는 삼 년 기도는 들어졌다. ‘무(無)’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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