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은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정부가 은행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사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 언뜻 연상되는 이미지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경제관료일 겁니다. 그래서 관치금융에는 일단 나쁘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독재 이미지는 걷어내고, 관치라는 단어만 살펴봅시다. 정부가 완벽하지 못한 시장을 통제하는 걸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장은 완전무결한 존재일까요? 그렇다면 정부는 없어져도 무방 할 겁니다. '잘못된 관치'는 있어도 '나쁜 관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로 요즘처럼 모두가 패닉에 빠져있을 때는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금융질서를 뒤흔드는 '정치금융'을 경계해야 합니다. 20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당시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은 공약을 보고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했었죠. "공무원들이 청와대, 국회 눈치만 보잖아요. 이젠 관치금융이 아니라 정치금융 시대가 됐더라고요."
출처: 픽사베이
잠시 직전에 쓴 글(머니내러티브<2>)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소상공인에게 50조원을 초저금리 특례보증 조건으로 대출해주겠다고 한 공약을 언급했었죠. 사정이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뒤집어서 은행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떼여도 원금은 세금으로 갚아준다지만, 요즘 같은 금리 상승기에 50조원을 다른 대출 상품보다 초저금리로 대출해준다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시중 5대은행의 중소기업 대상으로 대출 해준 액수가 50조원 정도 늘어났던 걸 감안하면, 저 공약은 은행 실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수 있겠죠. 은행으로선 여간 난처한 입장이 아닐 겁니다.
이젠 실현 가능성은 없어지긴 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훨씬 수위가 높았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청년들에게 1000만원씩 초저금리로 10년간 빌려주는 청년대출을 내놨었지요. 만 19~34세 인구가 1045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해 최대 104조 5000억 원까지 대출금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은행은 대출자가 상환 능력이 있건 없건 무조건 돈을 빌려줘야 합니다. 청년들이 못 갚으면 정부에서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세금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아닙니다. 허투루 쓰지 말아야죠. 13세기 중세시대에 유대계 디아스포라들이 갖은 핍박 속에서 대금업을 할 때도 이런 식으로는 안 했습니다. 돈을 못 갚는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하지 않았죠. 은행 태동기에도 대출심사와 상환능력에 따른 이자를 매기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었습니다.
두 가지 공약만 봐도 인기영합을 위한 '정치금융'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알 수 있겠지요? 공무원들도 정치인들의 명만 받들다보니 시장원칙을 무시한 저런 공약이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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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때는 오히려 예전에는 공무원들도 정치인들에게 아닌 건 안된다고 버티는 근성이라도 보이고 은행 단도리도 잘하는, 제대로 된 '관치금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은행처럼 공공성이 강하고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기관은 관료들이 감시감독도 하고 육성도 해야 합니다. 은행을 주주 이익 극대화를 따지는 민간기업과 같은 선상에 둘 수는 없으니까요.
은행들이 작년에 대출금리는 많이 올리고 예금금리는 적게 올려서 예대마진을 대폭 늘린 덕에 역대 최대 실적을 낸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은행의 저런 행태에 전 국민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1997년 외환위기 때 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그때 그 사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연금이 국내 4대 금융지주 지분을 각각 10%씩 가진 단일 최대주주가 된 계기가 됐지요. 대의명분상으로도, 실제 수치를 봐도 행정부는 은행 일에 개입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존재이지요. 물론 은행들이 리스크 대비를 철저히 하고, 공공서비스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요.
1998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한 가지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 해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거대 헤지펀드는 러시아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10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나 부도 직전에 몰리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급해진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주요 채권은행들의 행장들을 방에 몰아놓고 "부채를 출자로 전환해서 해결할 때까지 이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압박했지요. 결국 14개 은행들은 36억5000만달러를 긴급 지원하고 연방준비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해 돈을 풀며 위기를 겨우 막았어요. 그린스펀이 미국 법에도 없는 행동에 나섰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헤지펀드 하나가 붕괴되면 금융에서 산업 전체로 혼란이 삽시간에 번지기 때문이지요. 시장경제의 상징인 미국에서도 '관치금융'은 이런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