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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02. 2021

EP0. 프롤로그

prologue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찾아서

 2015년 5월 16일 토요일 스물아홉 살, 그때 나는 인천행 KTX 좌석에 앉아 있었다. 밀린 숙제를 끝낸 것처럼 그렇게 내 결혼식은 후다닥 끝나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결혼식은 끝나 있었고 쫓기듯 열차에 실려 가고 있었다. 사진 속에 나는 조금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설렌 거 같기도 하다. 둘 다 표정에 구김이 없고 지금 보다는 세상에 덜 찌든 얼굴이다. 6년 전에 나와 아내는 생기가 넘쳐 보인다.


열차 안에서 축의금 정산을 했다. 놀라움과 실망감 그리고 의문이 가득한 축의금 집계를 완료 열차 안에서 여러 가지 쪼잔한 생각(나는 친구 A에게 축의금을 했는데 친구 A는 나한테 안 했다. 내 결혼식에 철석같이 오기로 했던 지인 B가 오지 않았다 등) 잠겼다가 이내 인천공항역도착했다. 윗 지방의 밤공기는 싸했다. 의금으로 7만 원을 한 직장동료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10만 원짜리 친분은 아니고 그렇다고 5만 원은 부족한 거 같아서 그랬단다. 숫자가 특이하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나. 정말로 그 축의금 7만 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신혼여행은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초보 부부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결혼준비 초반 '결혼'을 쉽게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를 좋아하니 결혼하면 되지 뭐."정도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결혼식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결혼식이지만 내 결혼식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주연배우는 나와 아내, 연출은 우리 엄마가 한 '내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을 도망치듯이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충분히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신혼여행만큼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온전히 계획하고 실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에게 당분간 이런 장기 해외여행 기회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정된 예산과 시간 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여행지를 둘러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었다. 행하는 동안 사용여행 일정표에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예산 포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행이 아닌 전투를 준비했던 것 같다. 마치 전투에 임박한 군인처럼.


2015 이탈리아 - 스위스 여행 일정표


이탈리아, 스위스를 각각 1주일씩 총 2주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미술품을 좋아하는 아내가, 스위스는 자연경관을 좋아하는 내가 정했는데, 마침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이탈리아 '도모도솔라 역'에서 스위스로 환승할 수 있다.


과거 여행을 반추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공학도인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글로 표현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저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언제든지 책으로 낼 수 있다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재미있게도 같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내가 기억하는 것과 아내가 기억하는 것이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찍었던 사진 속 배경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이유가 있었다. 되짚어 보면서 글을 쓰는 것은 여행을 다시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작업이 진행될수록 흐릿했던 기억과 감성이 점차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행 당시에는 사진과 동영상 기록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글로 기록할 생각을 못했다. 그때는 그것들이 순간을 기록할 순 있어도 감성은 담지 못한다는 알지 못했 때문이다. 짧은 감상평이나 일라도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내가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성 마치 겨울을 앞둔 낙엽처럼 바스러지기 직전이다. 올 겨울이 오기 전에 보존 해두고 싶다.


여행지를 방문한 순서대로 글을 써볼까 한다. 이탈리아(로마, 바티칸 시국, 포지타노, 폼페이, 나폴리,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 스위스(체르마트, 인터라켄, 그란델 발트, 루체른, 베른, 취리히) 순서이다.


전형적인 여행기가 될지, 산문이 될지, 에세이가 될지, 일기장이 될지 잘 모르겠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이왕이면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즐겨보려고 한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 산문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걸까?" 나도 그동안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미뤄왔던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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