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역에서베네치아행 열차를 탔다. 2시간 거리다. 별일 없으면 오후 3시경에는 도착할 것이다. 여행에 지친 몸을 아무렇게나 좌석에 구겨 넣은 후 한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기 때문이다. 열차 특유의 일정하게 반복되는 진동과 소음이편안하다. 긴장을 풀고 몸을 맡겼다. 노곤해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꿈뻑꿈뻑 졸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열차가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를 횡단하는 다리위다. 이탈리아 동쪽 아드리아 해 끝, 베네치아 바다 석호를 횡단하는 리베르타 다리는 베네치아와 본토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다. 열차를 타고 바다를 횡단하는 경험은 앞으로 있을 그 어떤 베네치아 관광보다 감동적이었다.
처음 지하철 2호선 열차를 탔을 때가 생각난다. 당산역과합정역 사이당산철교를 건너기 시작하면 한강이창밖으로가득 들어차며 반짝거렸다. '이게 한강이구나. 지하철이 한강도건너는구나.'라고 감탄했다. 그땐 정말 촌놈이었다. 요새는 예전만큼 감동을 느낄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지하철이 그 구간에 돌입하면 창밖으로 멍하게 한강을 감상한다.
상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했다. 나폴리 민요 제목이기도 한'성녀 루시아'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성녀다.역사 밖으로걸어 나오자녹색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발에 닿을 듯이 찰랑거린다. 베네치아의 뜨거운 햇살과 관광지 특유의 북적거림이 나를설레게 했다.
고색창연한 중세 양식의 건축물을 두리번거리며 좁은 골목길을 걷고 다리를 건넜다. 로마 때 보다 숙소를 찾기가 더 어려웠는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수많은 다리를 건너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돌이켜보면 비싸더라도 곤돌라나 해상버스를 탔어야 했다.(베네치아는 120여 개 섬과 400여 개의 다리로 이뤄져 있다.)
로마에서 교훈을 얻어서 일까? 숙소를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며 가기로 했다. 천천히 주변 건물과 골목, 조각상 등을 구경하며 걸었다. 마지막 골목에서 조금 더 헤매었지만 저녁무렵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 안쪽 깊숙한 곳에 이틀간 예약했는데,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그래도 현지에 와서베네치아인들이 물 위에 이룩한 업적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베네치아 북쪽, 작은선착장 (venezia fondamenta nuove)
게스트하우스 창밖으로보이는 작은선착장이 고즈넉했다. 해가지고 검푸른 어스름이 몰려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선착장의 그린라이트를 보며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랐다. 작은 선착장의 보일듯 말듯한 녹색 등이 개츠비가 밤마다 응시했던 호수의 그린라이트와 닮았다. 개츠비 저택 호수 반대편에 있는데이지 저택의그린 라이트는이미 다른 사람과결혼한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욕망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