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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Oct 23. 2021

EP10. 붉은 피렌체

붉은 지붕의 바다

  짧은 피사 여행을 마치고 피렌체로 돌아왔다. 전날 밤에 보았던 피렌체 대성당을 다시 보기 위해서다. 피렌체 대성당 역시 종탑과 두오모 대성당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렌체에 오면 두오모(대성당 쿠폴라)를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오모를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두오모가 아닌 '조토의 종탑' 오르기로 했다.


조토가 67세가 되던 해 무려 30년이나 중단되었던 종탑 공사의 책임자로 임명 되었다. 조토 '폴리크롬'이라는 기법 적용해서 설계했는데, 이 기법은 다양한 색의 대리석을 써서 건물이 마치 '채색'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 낸다. 흰색, 녹색, 붉은색의 3가지 대리석이 사용되었는데, 이탈리아 각지에서 조달됐다. 가까이서 보면, 탑이라기 보단 하나의 거대한 회화 작품 같기도 하다.


조토의 종탑을 오르는 길 예상외로 많이 힘들었다. 화려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어두컴컴하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무채색 회색 벽으로 되어있다. 좁고 낮은 통로는 성인 한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규모다. 체구가 큰 나는 좁은 통로에 몸을 욱여넣으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내 뒤로 다른 관광객들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돌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제발 이번층이 꼭대기 전망대이기를...' 나직하게 외치며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다. 여기를 선택한 나 자신에게 조금씩 화가 차오르며, 급기야 기도하는 심정으로 414개의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야만 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부디 조토의 종탑을 오르지 않길 바란다.

조토의 종탑(좌), 조토의 종탑 꼭대기로 향하는 내부 계단(우)


조토의 꼭대기 전망대에 섰다. 두오모 쿠폴라와 피렌체 시내 전경을 목격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실제로 처음 보는 건데도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낯익다. 두오모의 거대한 쿠폴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비로소 내가 피렌체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난다.


지난밤 골목에서 피렌체 대성당을 올려 봤을 때 하고는 다른 색감과 구도가 있다. 밤에는 어두컴컴한 밤하늘과 대비되어 하얀색 대리석이 더욱더 하얗게 질려 폴리크롬의 정수를 느꼈다면, 낮에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붉은색 돔(쿠폴라)이 따뜻하고 포근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한 피렌체 이미지들도 떠올랐다. 복합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난 여기 피렌체에 왔다.


피렌체 시내 건물의 붉은색 지붕이 바다와 같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베키오 궁전의 첨탑이 뾰족하게 서 있다. 도시는 완벽하게 중세에 멈춰있었다.

조토의 종탑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피렌체 대성당 쿠폴라
조토의 종탑에 사 보이는 피렌체 시내 전경
피렌체 대성당 내부에서 본 쿠폴라 회화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돔(쿠폴라)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지름 42미터, 높이 136미터의 돔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모든 부속 건물들을 완공해 놓고도 돔을 완공하지 못했는데, 당시 기술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마지막 난제인 대형 쿠폴라를 완성함으로서 무려 140여 년이 걸린 공사를 끝냈다. 피렌체 대성당은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몇천 세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데 2, 3년이면 충분한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가 더 이상 건설에 100년 이상 공을 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재화가 충분하고 목적이 분명해도 굳이 오랜 시간 동안 건설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무려 140년이라는 시간을 먹인 예술작품에 열광하고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피렌체 대성당의 감동을 뒤로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자자 레스토랑'으로 갔다. 티본스테이크로 유명한 식당인데,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내부 인테리어를 붉은색 벽돌로 마감하여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이 있다. 오늘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지붕들의 붉은색 벽돌들이 건물 안으로 가라앉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티본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티본스테이크는 처음이었다. 본이 'T'자 모양이라서 티본이고, 티본을 경계로 등심과 안심이 나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두꺼운 스테이크가 있다는 사실도, 그 두꺼운 스테이크가 붉은 생고기 수준으로 Rare 하게 구워서 서빙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유럽인 대부분이 Rare로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한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조금 더 익혀 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다. 조금 더 익은 스테이크가 서빙된 후 아내와 나는 게걸스럽게 스테이크를 해치웠다. 맛이 섬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두꺼운 스테이크를 힘들게 썰었던 기억은 다. 아내는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조토의 종탑에서 피렌체 시내의 붉은 전경을 감상하고, 붉은 지붕 아래 붉은벽돌 인테리어 식당에서 붉은 스테이크를 썰었다. 돌이켜 보니 피렌체 마지막날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은은하게 그 벽돌색처럼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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