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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Nov 22. 2021

무신론자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아주 오래전, 내가 다니던 학교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뀔 무렵 즈음 일이다. 나와 내 동생은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의 명에 따라 반강제로 매주 동네교회꾸역꾸역 나가야만 했다. 나는 왜 매주 일요일마다 방영하는 재밌는 만화영화 대신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도 논리적으로 나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보이는 교회 내부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거기에는 성인이 아니라 '사람들'만이 그득했다.


덕분에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종교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구나, 성인의 고상한 의지(성경)와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과는 괴리가 있구나... 하고 말이다.


드라마 '지옥'은 초자연적인 현상(고지를 받고 지옥의 사자가 지옥으로 데려가는)이 공개적으로 벌어질 경우 사이비 종교가 어떻게 이 세상을 잠식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설정은 참신하지만 주제는 클래식하다. '종교와 인간, 종교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한다. '지옥'은 단순히 재밌는 SF나 스릴러 따위가 아니다. 예고편에 나오는 지옥의 사자는 비주얼이 압도적이지만 그뿐이다.


감독은 끊임없이 '새 진리회'를 빌려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인물들의 대사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신의 의도'이다. '새 진리회'는 신의 의도를 각색하고 해석을 독점하여 사회 영향력을 키운다. 재미있는 점은 새 진리회를 설립한 '정진수 의장'의 원래 목적은 '공포를 통한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라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우린 이미 '지옥'을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종교는 언어와 돈과 더불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나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종교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나 같은 무신론자는 일부 종교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가 중동 현장에서 일할 당시,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경솔하게 내뱉었다가 현지인에게 봉변을 당할뻔한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정의'에 대해서 정의하고 강요하는 자들을 경계한다. 정치, 경제, 종교 등 각종 영역에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호도하는 '새 진리회'같은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본 적이 있거나 관심이 있다면 '지옥'의 감상시라. 자신있게 추천한다.




아! 그리고 드라마 중반, '정진수 의장'역의 유아인 배우가 형사에게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연기가 정말 좋았다. 형사가 비추는 플래시가 마치 핀포인트 조명처럼 유아인 배우를 비춘다. 유아인 배우는 진짜 사이비교주인 것처럼 연기한다. 그 순간 만큼은  설득당하고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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