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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Sep 05. 2021

참을 수 없는 영화, 기생충

내가 불쾌한 이유

  영화 기생충을 봤다. 영화관을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며 동시에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수치심, 모멸감 그리고 약간의 분노까지. 무언가 부정적인 느낌들이 조금씩 섞인 듯한 이 느낌. 이것은 점점 고조되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유지되었다. 평생 독후감이나 영화감상문 따위를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의 기분을 기하기 위해 몇 자 적어본다.


먼저 내가 왜 이런 '이상한 기분' 또는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나도 극 중 '기생 가족'과 같은류의 사람이고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본 기생충은 나한테 너무나도 잔인한 영화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너도 얘네들이랑 비슷한 부류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성이 남궁으로 시작하는 위대한 건축가가 지은 멋진 저택에 기생하는 '기생 가족'은 '집주인 가족'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거실에서 그들만의 파티를 연다. '기택'이 '충숙'과 웃으며 술을 마시고 놀다가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멱살을 잡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한동안 멈췄다. 어린 시절 끔찍이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곤 했는데 멱살도 그중 하나였다. 분에 나는 스무살이 넘어 대학교 2학년이 되도록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우연히 갖게된 술자리에서 내가 보통사람보다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멱살을 잡힌 상태의'충숙'은 실성한 것처럼 눈은 울고 있지만, 입은 과장되게 웃으며 말한다. "나도 돈 많으면 얘네(집주인 가족) 보다 더 착해"라고 말이다. 거기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어머니의 본래 성격이 우악스럽고 독한 성격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모도 성격도 '충숙'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늘 '돈, 돈' 하는 것도 생활고에 너무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배가 싸해지며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 시절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부유한다.


그런 장치들은 영화 곳곳에 즐비하다. '몸에 밴 반지하의 냄새', '끊임없는 거짓말', '기생 가족의 비속어' 등등. 기생 가족은 집주인 가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비교적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회사에서 밥벌이를 한다. 흙수저부터 금수저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금수저는 일단 '구김'이 없다. 성격도 좋고, 교양 수준도 높으며, 작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좋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왠지 섞이고 싶지 않은, 아니 섞일 수 없는 이질감이 존재한다. 그들과는 무엇인가 마음이 불편하며,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영화에서처럼 '나의 냄새'가 닿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개봉 후 다음날 어느 신문 사설란에 교수의 영화평론이 실렸다. 교수라는 번듯한 신분과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할 정도의 멋진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다. 그녀조차도 자신의 경험(재벌가 자식의 문학 과외선생)을 기생충에 투영하며 평론을 시작한다.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대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 어딘가 모자라지만 영악하고, 불쌍하면서 무서운 '기생 가족'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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