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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Jan 15. 2022

복직

육아휴직의 대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자 팀장이 낸 육아휴직의  참혹했다. 5개월 동안 두 아이들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못다한 자기개발의 여유를 즐기는 동안 사내정치 감떨어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전국에 사업소가 있는 우리 회사는 매년 연초에 하는 정기인사발령이 빅 이벤트인데, 신임 사장의 취임 일성으로 예정보다 한 달 빠르게 정기인사발령이 났다. 분에 나는 '준비'할 시기를 놓쳐버리고 인사부서의 처분만 기다리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준비'란 누울 자리(보직)를 보는 것이다. 사기업과 달리 우리 회사는 인사에 그 사람의 '인맥'이 관여한다.''이 관여한다는 말이다. 나는'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없는데도 서울에 몇 년간 근무한 것이 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올해는 시골에 있는 본사에서 팀장급 직원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서울 및 수도권 발령이 치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늦었지만 대응을 해야 했다. 수도권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지방으로 발령이 나야만 다. 여섯 살 아들과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딸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늦었지만 안테나를 가동해야 한다.


지역본부에 있는 동기가 서울에서 170km 떨어진 오지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넌지시 귀띔을 해줬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곳이 아닌, 서울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지역으로 발령날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그곳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는 실력자가 나와 오랫동안 근무했던 상사와 친분이 있다고 말이다.


몇 년 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상사에게 새해부터 대뜸 전화를 했다. 어색하게 안부를 물으며, 사정이 이러하니 힘을 써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전화 걸기가 참 망설여지고 어려웠다. 심지어 그분은 해외에서 근무 중이었다.


전화 한 통의 위력은 대단했다. 서울까지 거리를 70km나 줄였다. 그래도 여전히 100km 거리다. 여전히 집에서 출퇴근이 어렵다.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나는 신입시절 그토록 혐오하던 행위를 했다.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타협'을 했다. 나이를 먹는 걸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일까. 생각을 많이 다.


그 상사아래에서 팀원으로 근무할 당시 동료들과 그분 욕을 많이 했다. 여러모로 존경할 점이 없었던 독불장군형 스타일에 때로는 팀원들에게 인격모독적인 발언도 종종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속내와 달리 최선을 다해서 '모셨다'.(우리 업계에서는 상사와 근무하는 것을 모셨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모시는 것이 반전이다.) 나는 업무 프로가 되고 싶었다.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좋든 싫든 할 수밖에.


그때 그분을 잘 모셔서 다행이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다행이다. 집에서 가까워져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조금도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다.


누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과 쉽게 타협한다고 하였는가. 이토록 힘든데.


그래도 다행이다. 가족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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