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완열 Jan 26. 2022

하하호호 회식

두렵다.

어느 평범한 회식자리였다. 사심대 중반으로 보이는 협력사 남자 직원은 묻는 말에만 가볍게 대답하며, 조용히 고기 굽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였다. 그분은 우리보다 먼저 새벽같이 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챙기는 양반이었다.


그날도 나는 익숙하게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서 협력사 팀장들과 회의 후 뒤풀이로 식당을 예약했다. 가볍게 시작된 저녁식사 반주가 진득하게 흘러가며, 오십 대가 넘어가는 팀장들끼리 의례적인 말들을 주고받으며 거나하게 취하기 시작했다.


"하하 호호 올해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우리가 부탁드린 A안, B안, C안 추진에 잘 협조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려야죠 팀장님, 하하호호"


도급계약에서 규정하는 '갑과 을'의 관계는 계약 밖의 영역에도 미묘하게 그 영향을 끼친다. 언제나 '갑'의 영역에 있는 우리 회사 팀장님의 우월한 지위와 권력은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언제나 '발휘'된다.


코로나로 여섯 명으로 제한된 회식자리는 우리 측과 협력사 팀장만 신나 보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 측 사람들 세명은 협력사 팀장의 열심히 하겠다는 낯간지러운 말과 함께 하하호호,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말수가 적었던 협력사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식사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일을 야 돼서 술은 어렵겠다고 조심스럽게 사양했다.


"미리 날짜를 잡은 건데 이러시면 저희가 죄송한데, 허허"라며 살짝 불편한 속내를 비추신 우리 팀장님은 이윽고 본인이 제일 신난 대화에 열을 올리며 알콜을 부었다.


회식을 끝내고 유독 말수가 적었던 그분과 함께 사무실 돌아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분의 한마디에 알콜에 마취된 정신이 확 깼다. 며칠 전에 부친상을 당한 직원이 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팀장님은 아직도 그 회사 직원들과 생갈비집에서 있었던 회식이 "위로와 격려, 협조와 양해"를 구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나는 정말로 두렵다. 알콜에 내 몸과 정신이 마취될까 두렵다. 오래된 조직의 문화와 관습에 젖어들까 두렵다.


두려운 마음조차 없어질까 두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