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무 다른
깔끔한 외모, 인 서울의 학벌, 온화한 표정, 쉽게 짜증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차 한잔 사는 것 따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에 친절함과 성실함은 덤이다. 이것이 내가 회사에서 만난 보통의 사람들이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이다. 특히 입사 10년 차 내외의 직원들은 놀랄 만큼 비슷한 유형이다. 가족 모두 회사에 다니는 경우도 많다. 아내가 옆 부서에서 근무한다거나, 아버지가 본부장이었다거나. 등등 말이다. 나는 그들이 좋다. 성실하고 친절하니까. 편하니까. 나한테 잘해주니까.
나는 이들을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동시에 질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내에게 수없이 그들의 배경을 반복적으로 일러바치고 나와 비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고등학교 때 KBS 골든벨을 울린 적이 있다던 입사동기도 그런 유형이었다. 아버지가 우리 회사 고위간부였던 그 친구는 과학잡지를 매달 구독했다고 했다. 누구나 들어봄직한 서울의 대학을 나온 그 친구는 승진시험도 한 번에 해냈다. 카추사 출신인 그는 영어도 잘했다. 다만 운동신경이 없어서 축구와 같은 구기종목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것이 그나마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얼마 전, 새로운 부임지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팀원을 받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도 그런 유형으로 보였다. 부모님이 도움을 주셔서 강남에 집이 있노라며, 언젠가 서울로 이동할 거란 그의 말과 여유에 그의 배경이 부러우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면서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해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전에 회사의 고위간부였던 그 직원의 아버지가 나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던 분이라는 것이다. 신입시절이긴 했지만 그분을 기억한다. 놀라운 인연이다. 그 직원은 아버지같이 지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였다. 업무능력도 훌륭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부럽구나, 좋은 환경에서 구김 없이 자랐겠구나. 내가 저런 환경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내 아들도 저렇게 될까?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아등바등 살아온 나는 늘 알 수 없는 욕구로 가득 차 있다. 남들보다 빨리 가정을 이뤘으며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노력했고 남들보다 부자가 되고 싶어 열심히 재테크를 했다. 아직도 욕망의 수레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화목한 가정과 재산을 주지 않으셨다. 대신 끊임없는 욕망을 물려주었다. 그것은 끈적한 타르와 같다. 아무리 닦아내고 떼어내려고 해도 말끔하게 지울 수 없다.
그들은 매일 밝은미소로 나를 반기며 상기시킨다. 그들과 다른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