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돌아와 언니를 돌보고,
강남으로 와서 직장을 구하고 연수원에 합격하기까지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쉬는 주말에는 친한 친구를 만나 불금을 보내며
몇 년 남지 않은 청춘을 마음껏 즐겼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지금 생각하면 한창 젊을 때였지만
그땐 서른이 되면 모든 걸 내려놓고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드라마 공부도 했지만,
놀기도 열심히였다.
대학 때 내가 ‘주당’이라는 걸 깨달아버린 뒤
나는 자연스럽게 애주가가 되었다.
금요일, 토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한잔하거나
함께 사는 둘째언니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신나게 놀았다.
호주에서 돌아올 때 결심했던 게 있었다.
“나… 비혼주의자가 될 거야.”
함께 살던 친구가 틀어준 섹스 앤 더 시티 때문이었다.
처음엔 자극적이었지만
보다 보면 이상하게 현실적이고, 공감되고,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특히 캐리.
칼럼을 쓰면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녀에게서
왠지 모를 내 모습을 보았다.
“맞아. 결혼은 안 해도 돼.
유부남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야.
난 캐리처럼 글이나 쓰면서 연애만 할 거야.”
그게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내 다짐이었다.
결혼을 안 한다고 했지,
연애를 안 한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회사와 집, 연수원만 오가다 보니
남자를 만날 일이 없었다.
연애를 1년 쉬었더니
문득문득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소개팅도 잘 들어오지 않았고,
직장에도 썸 탈 사람은 없었다.
대학교 때부터 친했던 남사친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소개할 만한 놈들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친구와 약속이 있어 한껏 차려입고 출근했는데
갑자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미안한데.
내 친구가 오늘 남친이랑 헤어져서
울고불고 난리야.
가서 위로 좀 해줘야 해.”
…그럼 나는?
한껏 꾸민 내가 민망해지던 그때
문득 남사친이 떠올랐다.
언제든 불러도 나올 수 있고,
술 잘 마시고,
얘기도 잘 통했던 그 친구.
전화하자마자 역시나 “오케이!”
우리는 신림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퇴근 후 나는 신림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될 줄
정말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