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으로 보이는 새벽빛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아쉬움과 미련, 그리고 조금의 후회까지—
내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렸다.
공항에는 형부와 큰언니가 나와 있었다.
언니의 얼굴이 평소보다 야위어 보여서
괜히 가슴이 아렸다.
나는 다시 화성으로 내려가
유산 후 회복 중인 언니를 도우며
첫째 조카를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 사이에서도
호주에서 느꼈던 자유의 기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무렵, 일본에서 돌아온 둘째언니가
선릉역 근처 작은 원룸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곳으로 들어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돌아온 뒤
더 강해진 한 가지 마음—
“이제는 진짜, 드라마를 쓰고 싶다.”
한국작가협회 연수원에 들어가려면
서류도 준비해야 했고
생계를 위한 일자리도 필요했다.
그러다 선릉역 근처 삼성 SDS 문서실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운 좋게도 바로 합격했다.
문서실 업무는 단순했다.
오전에 도착한 우편물들을 정리하고
부서별로 나누면 할 일이 거의 끝났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9시–5시, 규칙적이고 마음 편한 직장이었다.
덕분에 퇴근 후
저녁 6시 40분에 시작하는
한국작가협회 연수원 수업에도
문제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연수원 기초반에 합격한 뒤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회사—연수원—서점—영화관—다시 집.
하루하루가
오직 ‘드라마’라는 목표로 채워졌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다.
돈은 늘 빠듯했고
친구들과 만날 여유도 없었다.
가끔은 외로움이 깊게 스며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나는 참 좋았다.
처음으로 ‘나답게 사는 느낌’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