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행복의 문턱에서 다시 만난 현실

by 엣지있는 김작가

퇴원하는 날.

꿈에 부푼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 어떤 날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오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비용을 정산하는데,

병원비가 3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국가 지원이 있어 우리가 내야 하는 금액은 삼백만 원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우리 형편엔 큰돈이었다.


그때 문득 엄마가 “태아보험 꼭 들어놔라”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친정엄마는 내가 세 살 때부터 보험 일을 해오셨다.

첫째 때는 형편도 어렵고 생각 자체를 못 했지만,

둘째는 엄마의 권유로 가입해두었었다.

다행히 태아보험에서 100% 지급이 되어

우리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입원 당시 지오는 경기를 일으켜

약을 복용하며 정기적으로 뇌파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살아준 것만으로도, 내 품으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했다.


작은 경차에 조심스레 지오를 안아 태우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때 우리는 반지하 빌라에 살고 있었다.

폐가 약한 지오를 그런 공간으로 데려오는 것이

미안하고 마음이 쓰였지만,

공기청정기도 두고 환기도 자주 시키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드디어 누나와 처음 만나는 날.

지오의 안정이 중요해 효주는 그동안 가까운

시어머니 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시어머님이 효주를 데리고 집으로 오셨다.


21개월 터울이었지만 효주는 질투하나 없이

처음 본 동생을 정말 예뻐했다.

너무 예뻐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효주도 아기라

만지는 힘 조절도 어렵고,

뽀뽀한다며 지오의 가슴을 세게 누르기도 해

한 시간도 채 함께 있지 못한 채

다시 시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효주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빨리 회복해서,

우리 네 식구가 부비고 자고 먹는

평범한 일상을 하루빨리 되찾고 싶었다.


얼마 뒤, 회복을 도와주시겠다며

친정엄마가 부산에서 올라오셨다.

지오를 보시며 “어쩜 이렇게 잘생겼냐”며

몇 번이고 들여다보셨지만,

반지하라는 환경이 지오에게 해가 될까

내내 걱정하셨다.


엄마는 청소도, 환기도, 식사도

더 꼼꼼히 챙겨주셨고

지오는 퇴원 후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경기도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냈다.


어느 순간 뇌파도 정상으로 잡혔고

약도 끊고

병원도 더는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범하고 소소한 나날이 계속될 거라 믿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자상한 남편.

돈보다 가족의 행복이 더 중요했고

그게 가장 소중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화, 목 연재